[발언대]'졸속'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함께 고쳐나가자
산업계 의견 외면한 채 확정
의료진들은 업무 과중에 불만
계도기간 업계 목소리 경청해야
전례에 없던 전염병이 지나가며 국민들은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 분야에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한시적으로나마 비대면진료라는 새로운 의료 서비스가 허용된 것이다. 별다른 규제 없이 운영된 비대면진료는 지난 3년간 1419만 명의 건강을 지키며 우리 일상에 자리 잡았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이용자의 62.3%가 비대면진료 이용에 만족한다고 응답했으며, 87.9%의 응답자는 향후에도 비대면진료를 활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3월 같은 기관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비대면진료를 활용한 경험이 있는 의사들이 이후에도 이를 활용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66.4%에 달한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비대면진료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국회에는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위한 여러 의료법 개정안이 계류 중에 있다. 정부도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되면서 비대면진료를 중단해야 할 상황에 놓이자 시범사업을 통해 제도화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비대면진료의 대상을 동일 상병, 동일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재진 환자로 한정했으며, 비대면진료 가능 기간도 30일로 제한했다. 게다가 비대면진료의 최종단계에 해당하는 약 배송도 금지했다. 복지부는 시범사업안 설계 과정에서 의료계와 산업계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산업계의 의견은 외면한 채 이미 확정된 한 장짜리 시범사업안을 통보했을 뿐이다.
결국 지난 1일 복지부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시행된 이후 비대면진료 현장에는 큰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환자의 비대면진료 가능 여부를 의료기관이 직접 확인하도록 하는 복지부의 권고로 인해 의료진의 제반 업무가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접수 및 수납, 처방전 전달 등 비대면진료 플랫폼들이 대신 수행하던 행정업무도 의료진이 직접 진행해야만 했다.
비대면진료에 따른 부담이 가중되자 의료진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수도권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하는 한 전문의는 “플랫폼이 해결해주던 행정절차가 오롯이 의료진의 책임이 됐다”며, “복잡한 행정절차로 인해 진료에 집중이 안 되고, 대면진료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협의회에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시범사업 이전 비대면진료를 잘 이용하던 환자들도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시범사업이 시작된 이후 전체 비대면진료 요청 중 절반가량이 의료기관으로부터 거부당하거나 취소됐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던 한 환자는 플랫폼 리뷰를 통해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잘 이용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진료를 받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며,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오픈런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전달했다.
산업계를 비롯한 의료진과 환자들은 이번 시범사업의 한계를 예견하고, 보다 나은 비대면진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읍소해왔다. 산업계는 대통령실에 호소문을 전달했으며 비대면진료에 참여하고 있는 의·약사들은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10만명이 넘는 이용자들도 ‘비대면진료 지키기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졸속행정으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시범사업으로 인해 비대면진료 현장에서는 의료진과 환자들의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행인 점은 아직 3개월의 계도기간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시범사업의 평가를 위해 원격의료산업협의회를 비롯한 의약단체,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자문단을 구성했다. 지금이라도 자문단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국민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비대면진료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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