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견인 vs 비용인상 인플레이션
중산층 삶 쥐어 짜이는 스크루플레이션
측정 방법에 따라 근원·기대인플레이션
기후위기에 애그·에코·그린플레이션 등장

[송승섭의 금융라이트]중앙은행의 영원한 숙적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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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 세계를 덮쳤던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이 점차 낮아지는 모습입니다. 한국은 6%대를 넘나들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들어 넉달 연속 감소하면서 1년 반 만에 3% 초반까지 떨어졌죠. 인플레이션 관리가 목적인 중앙은행과 고물가로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이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도 다 똑같은 인플레이션이 아닙니다. 경제학에서도 인플레이션을 세분화해서 연구하고 있고, 경제현상에 따라 각종 신조어가 탄생하고 있죠.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인플레이션 용어만 십여개에 달할 정도로요. 얼핏 헷갈리기 쉬운 인플레이션 용어들을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수요견인 vs 비용인상…물가는 대체 왜 오를까

경제학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원인에 따라 크게 두개로 분류합니다. ‘수요견인’ 인플레이션과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이죠. 가격은 총수요와 총공급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원래 경제학에서는 인플레이션이란 총수요가 증가하면서 발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명품가방을 많이 사면 살수록 가격이 오르는 것처럼요. 또 정부가 돈을 마구 풀거나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는 등 총수요가 증가해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란 통상 소비와 투자가 활발한 경기 호황 때 나타난다고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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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70년대 이상한 일이 발생합니다. 글로벌 경기가 안 좋은데 물가가 오르는 일이 발생한 거죠. 당시 오일쇼크로 기름값이 비싸졌는데, 생산비용이 증가한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기 시작한 게 원인이었죠. 이렇게 총수요는 그대로지만 총공급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을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릅니다. 명품가방을 사려는 사람들은 그대로인데, 명품가방의 공급이 줄면 당연히 가격이 오르게 되겠죠? 1970년 재무장관이었던 영국 보수당 정치인 이언 맥클레오드는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이란 말 대신 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합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 불렀죠.


중산층 삶은 쥐어 짜이는데 물가가 오른다

경기 상황에 따라 인플레이션을 분류하기도 합니다. 전반적인 경기침체까지는 아니지만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와중에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을 ‘스크루(Screw)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스크루는 쥐어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중산층의 살림살이가 쥐어짜일 정도로 나쁜데도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스크루플레이션의 경우 스태그플레이션과 달리 고소득층에 별다른 타격이 없고, 중산층에 직격탄을 날린다는 점에서 빈부격차 확대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혹자는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게 스크루플레이션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지만 그 속도가 점차 낮아지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은 ‘슬로우(Slow)플레이션’이라고 부릅니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던 2005년과 2007~2008년, 2010~2011년 발생한 적이 있죠. 슬로우플레이션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전 단계로 여기기도 합니다. 슬로우플레이션을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될 수 있거든요.


근원 인플레이션과 기대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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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은 측정 방법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습니다. 통상 우리가 물가라고 부르는 수치는 사실 소비자물가지수입니다. 만약 물가지수에 공장을 짓는 비용이나 대형 기계 가격까지 마구 포함한다면, 대다수 국민들은 우리 물가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자주 쓰는 품목 458개를 선정해 가격을 조사합니다. 쌀이나 라면처럼 하나의 품목인 것도 있고요, 냉동식품이나 운동용품처럼 여러 물건을 포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비자에게 중요한 항목일수록 가중치를 높게 부여해서 물가를 계산합니다.


그런데 소비자물가만 측정하면 과연 정확한 물가를 알 수 있는 걸까요? 소비자물가지수 품목 안에는 채소나 과일 등도 있습니다. 이런 농산물은 큰 태풍이나 가뭄 때문에 가격이 확 오르기도 합니다. 석유가격도 생산국의 정책에 따라 널뛰기 일쑤고요. 소비자물가에만 의존하면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통계청에서는 ‘근원인플레이션’을 측정하고 있습니다. 근원인플레이션이란 일시적인 충격으로 발생한 물가변동을 제외한 지표를 말합니다. 오직 기초경제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장기적인 물가상승률이죠. 만약 소비자물가가 오르고 있는데 근원물가가 그대로라면, ‘일시적인 요인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군.’하고 생각해볼 수 있겠죠. 한국에서는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소비자물가지수’라는 이름으로 매달 발표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아닌 한국은행에서 조사해 발표하는 인플레이션 수치도 있습니다. ‘기대인플레이션’이죠. 기대인플레이션은 경제활동 주체들이 앞으로의 물가를 어느 정도로 예측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지표입니다. 한국에서는 통상 1년 뒤의 예상물가 수준을 기대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기대인플레이션은 예상치라서 상품의 가격조사가 아니라 사람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해 알아냅니다. 기대인플레이션만 잘 파악하면 중장기적인 물가관리에 아주 유용하겠죠.


웨이지플레이션에 애그, 에코, 그린플레이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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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기대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웨이지플레이션이 초래되기도 합니다. 웨이지플레이션은 임금을 뜻하는 ‘웨이지(wage)’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죠.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을수록 근로자들은 물가상승률에 걸맞은 임금상승률을 요구하게 됩니다. 임금이 오르면 생산비용이 높아지고 다시 물가상승과 임금상승을 반복하는 악순환(wage-price spiral)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6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만나 “과도한 임금인상은 고물가 상황을 심화시킨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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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기후위기에 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환경과 관련된 인플레이션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에 물가상승을 뜻하는 애그플레이션은 농산물의 가격이 오르면서 일반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뜻하죠. 폭염이나 가뭄, 한파 등 환경(ecology)적 요인에 따라 생산비용이 증가해 발생하는 에코플레이션도 있고요. 친환경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규제 때문에 원자재가격이 상승하는 그린(green)플레이션도 있습니다.


편집자주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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