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유럽 '긴축 계속' 엄포에도…커지는 금리인하 기대
중앙은행-시장, '통화정책 방향' 동상이몽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통화정책 방향을 둘러싼 중앙은행과 시장 사이의 '동상이몽'이 계속되고 있다. 중앙은행은 최근 잇따라 높은 물가 상승세를 언급하며 "긴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시장은 계속해서 금리인하 가능성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국의 경우 최근 단기 시장금리와 기준금리의 차이가 일부 좁혀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금리인하 시점을 두고는 의견차가 크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통화정책의 파급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며 중앙은행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9일 금융시장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유럽 등에선 고금리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와 중앙은행의 긴축적 태도, 견조한 고용시장, 높은 물가상승률 등이 혼재되며 통화정책 방향을 둘러싼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실업률(3.4%)이 5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고용시장이 여전히 강한 모습을 보였으나, 시장에선 이와 무관하게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동결과 연내 인하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 Fed가 6월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은 85.8%에 달한다. 지난 5일 91.5%에 비해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Fed가 기준금리를 더 올리지 못할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지난 3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금리인하는 부적절하다"며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발언을 쏟아낸 이후에도 시장은 FOMC 성명에 '추가적인 정책 강화' 문구가 삭제된 것에 더 집중하며, FOMC 결정을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적으로 받아들였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4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시장은 ECB의 긴축 기조보다는 금리인상폭이 0.50%포인트에서 0.25%포인트로 축소된 것에 더 무게를 뒀다.
한은 런던사무소는 "라가르드 총재의 추가 금리인상 지속 의지에도 불구하고 시장 참가자들은 금리인상 기조의 종료 임박 인식, 기존 정책금리 인상의 금융여건 축소 영향 등에 주목하며 이번 정책 결정을 다소 비둘기파적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한은 프랑크푸르트사무소도 "라가르드 총재가 추가 금리인상 필요성을 언급한 점 등을 고려할 때 6월 0.25%포인트의 금리인상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만 최종금리 수준이 이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경우 이미 단기물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도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중앙은행과 시장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1년물 금리는 3.339%, 통화안정증권(통안채) 91일물은 3.276%로 기준금리(3.5%)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한은이 당분간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시장에선 '한은의 긴축 사이클이 끝났고 금리인하 시점이 가까워졌다'고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한은은 연내 금리인하는 시기상조라고 여러 차례 밝혔으나 시장은 하반기 금리인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기준금리가 올라도 투자자들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크다면 장기금리가 낮아지는 모습은 보일 수 있지만 통안채 91일물 등 단기금리가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4일 기자들과 만나 "통안채 금리 1개월, 3개월물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많이 내려가 있는 것은 문제"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중앙은행과 시장 사이의 괴리가 소통 문제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토마스 헬블링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부국장은 지난 4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도 과거 시장금리와 정책금리 간 차이가 있었던 상황이 있었는데 결국 커뮤니케이션 문제였다"며 "(중앙은행이) 충분한 소통을 한 다음 어느 정도 좁혀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은이 최근 단기물 금리를 기준금리에 맞추려는 노력을 한 이후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과 통안채 91일물 금리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일 인천 연수구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제56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거버너 세미나(Governors' Seminar)'에 참석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일각에선 이같은 엇박자가 계속되면 통화정책의 파급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날 하나금융포커스 논단을 통해 "자금시장의 단기금리가 낮아지면서 한은의 고물가 제어에 차질이 빚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며 "통화정책은 다양한 파급경로를 거쳐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 중 금리경로, 환율경로, 기대경로, 신용경로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돈 있어도 아무나 못 누린다"…진짜 '상위 0.1%'...
제이 페이리스 IMF 고문도 기자간담회에서 "시장금리와 정책금리에 차이가 있어도 결국 좁혀지는 걸 자주 봐왔다"면서도 "(차이 축소가) 완만하게 이뤄지지 않고 갑자기 충격이 발생하면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