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日, 인정한 '개인청구권'…협상카드로 활용 못했다
[강제징용 해법 후폭풍]
日조차 2018년, 1991년 개인청구권 미해결 인정
소멸된 것은 외교적 보호권…청구권 유효 입장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 (미쓰비시)
지난 6일, 강제징용 피해자의 당사자이자 피고 기업들은 이같이 밝혔다. 우리 정부가 ‘제 3자 변제’를 골자로 하는 피해자 배상 해법을 밝힌 직후다. 두 기업은 1965년 협정으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으니 추가로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논리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일본이 일관되게 이같은 주장을 펼쳐온 것은 아니다. ‘1965년 협정’에서 소멸된 것은 외교적 보호권이지, 개인 청구권은 남아있다는 의견이 일본 내각에서도 여러차례 나왔다. 외교적 보호권이란 국가가 나서 외국 정부를 대상으로 개인들의 피해를 챙겨줄 권리에 한정된다. 국가와 별개의 주체인 개인청구권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얘기다.
외교적보호권만 소멸 주장 日서도 나와
2018년 고노 다로 외무상은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고, 그 보다 앞선 1991년 야나이 슌지 외무성 조약국장도 “외교보호권을 양국이 포기한 것이지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특히 연합뉴스가 2010년 입수해 보도한 일본 외무성의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문서는 ‘협정 체결 후에도 개인청구권은 유효하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당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평화조약에서 국민의 재산 및 청구권 포기의 법률적 의미'(1965년 4월6일자)와 '일한 청구권조약과 재한(在韓) 사유재산 등에 관한 국내 보상 문제'(1965년 9월1일자) 등 내부문서 3건에서 "한일청구권협정 2조의 의미는 국제법상 국가에 인정된 고유한 권리인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것이고, 국민의 재산(개인청구권)으로 국가의 채무를 충당한 것은 아니다"라며 "개인이 상대국 국내법상의 청구권을 갖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원본보기 아이콘물론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한일 청구권 협정 합의에 따라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더라도 (소를) 이행할 수 없다”고 최종판단했지만, 일본 외무성 차원에서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발언은 수차례 나왔다.
강제노동 피해자를 돕는 일본 시민사회도 같은 주장을 해왔다. 시민단체인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 2020년 발행한 ‘한국 징용공 문제 Q&A' 자료에서 “소멸된 것은 국제법상 외교적보호권이다. 개인청구권은 국가간 결정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인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 2020년 발행한 ‘한국 징용공 문제 Q&A' 자료에서 “소멸된 것은 국제법상 외교적보호권이다. 개인청구권은 국가간 결정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원본보기 아이콘1991년 야나이 슌지 외무성 조약국장의 발언 이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이 연이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가 이 시기부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소멸됐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고, 일본 강경보수와 우익 세력은 이를 확고한 대응논리로 내세웠다.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도 영향을 줬다.
자국민 피해 원자폭탄 사건 때 ‘외교적 보호권만 포기’ 논리 내세운 탓
일본 외무성의 개인 청구권에 대한 해석이 사법부의 판결과 모순됐던 것은 자국민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됐던 1945년 히로시마·나가시키 원자폭탄 사건 영향이다.
일본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연합국에 대한 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 그러자 원자폭탄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가 청구권을 포기한 탓에 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됐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일본 정부는 개인 청구권 자체는 소멸하지 않았으니 일본 정부가 직접 배상에 나설 일은 아니라며 책임을 피했다. 이 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포기한 것은 외교적 보호권이며, 배상청구권 그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1964년 도쿄 지방재판소)는 논리가 나왔다. 이 판결을 계기로 1968년 원폭 특별조치법이 제정됐고, 지금의 피폭자원호법으로 진화됐다.
자국민들에게 조약으로 포기한 건 ‘외교적 보호권’이란 입장을 밝히다보니 한국인들에 대해서도 한일협정을 이유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개인청구권 인정 → 식민지배 조약의 불법성 인정 → 식민국에 배상조치 쇄도’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일본이 전쟁범죄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순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국가 대 국가의 배상이 끝났던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까지 천문학적인 규모의 개인청구권을 요구할 수 있다.
‘개인청구권 미소멸 논리 중요’ VS ‘개인청구권 소 제기권 사법부가 인정 안해’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제 3자 변제’ 방식의 배상 해법이 ‘개인 청구권은 소멸됐다’는 일본 측에 유리한 입장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에서조차 인정했던 개인청구권 미소멸 문제를 우리 측의 협상 카드로 내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일본 측에 유리한 주장(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을 그대로 받아들여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조급히 해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일본 외무성의 발언은 1965년 협정으로 다 끝났다는 논리를 일본 스스로 부정한 발언”이라면서 “하지만 한국 정부도 1965년 협정으로 종결됐다는 일본 측의 쉬운 논리를 인정해주면서 오히려 불리한 협상을 하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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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일본 외무성 발언이 그렇게 나오긴 했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소를 일으킬 권한은 갖지 못한다’고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본 법원은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청구권을 결코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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