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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생활]신생아 의료사고를 미숙출산 탓으로 바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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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생활]신생아 의료사고를 미숙출산 탓으로 바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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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오랫동안 임신을 바랐고 아이가 생기자 태아를 하늘의 축복이라고 여겼다. 산달이 되기도 전에 배에 극심한 통증이 생겼고 태아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산전 검진을 받던 병원에서 제왕절개가 시행되었다. 그 대학병원은 유명하고 믿음직했다. 특히 산부인과가 신뢰받는 병원이었다. 의사는 전문가 중 전문가였다. 의사는 산모의 뱃속에서 아이를 꺼내어 수술을 보조하던 전공의(레지던트)에게 건넸다. 전공의는 수술대에서 불과 1m 떨어진 곳에 있는 신생아 처치대로 급히 이동하려던 순간 앞으로 넘어졌다. 전공의 품 안에 있던 아기는 수술실 바닥에 부딪히고 말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불행한 사고였다.


의료진은 응급 초음파 검사를 통해 아기의 머리뼈 중 위에 위치한 마루뼈의 골절과 골절로 인한 머릿속 경막외 출혈을 확인하였다. 아이는 같은 날 사망하였다. 아이의 사망진단서에는 사인이 미숙 출산에 의한 신생아 출혈질환으로 기재됐다. 사망의 종류는 병사였다. 사망진단서 어디에도 머리 손상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의료진은 아이의 부모에게 미숙아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호흡곤란증후군과 출혈질환으로 사망했다고 전하였고 애도를 표했으나 수술실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이의 부모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의 슬픈 운명에 대한 비탄을 울음 속에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화장되어 부모의 가슴속에 영원히 묻혔다.

오전에 부검 세 건을 집도하고 밥 먹기도 귀찮은 어느 날, 형사가 찾아와 두툼한 자료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자료를 보니 아이가 낙상하면서 발생한 머리 손상은 즉각적인 사망을 유발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미숙아라는 점에서 사망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손상이라고 판단하였다.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실을 누가 투서했는지 물었다. "이 사건 때문에 퇴사한 직원도 있다고 하네요. 세상에 비밀은 없지 않습니까?"라고 답하였다. 아이의 사망 원인에서 머리의 손상이 미친 영향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해 주기로 약속했다.


법정은 가득 차 있었다. 피고인석에는 기소된 병원의 집행진과 산부인과 및 소아과 의사들이 앉아 있었고 변호인석은 만석이었다. 변호사들은 법의학자인 내게 머리 손상이 실제 사망에 이를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사망진단서도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퍼부었다. 필자는 외적 원인(머리 손상)이 내부의 원인(미숙아)에 영향을 주었을 때에는 외적 원인에 의한 사망으로 봐야 된다는 원칙을 담담하게 말하는 것으로 증언을 마무리했다.


1심 결과와 항소심 및 대법원에서 의료진 일부에 증거인멸, 의료법 위반, 과실 치사 등으로 법정 구속을 명하였다는 언론 기사를 보았다. 의료사고는 안타깝지만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법적 분쟁은 증가할 것이다. 과실이 발생할 경우 진정성 있는 사과를 표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결국 용서를 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료사고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일이 그런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필자 주변에 늘 함께 근무하는 의사들은 모두 환자의 안위를 걱정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다. 잠을 줄여가며 환자를 걱정하고 그들의 회복과 치유를 인생의 낙으로 삼는 순진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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