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의 원인은 게으름? “개인 책임으로 전가하면 곤란”
세계 과학자들, 영국 왕립학회에 모여 비만 원인 토론
“비만은 사회 시스템 문제로 접근해야 해결 가능”
[아시아경제 김준란 기자] 비만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학자들이 토론회를 개최하고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듯이, 비만으로 고통받는 사람 역시 비난하면 안 된다"며 "비만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미국 국립보건원 케빈 D 홀 박사, 코펜하겐대 토킬드 IA 쇠렌센 교수 등 비만 연구자들은 최근 영국 런던 왕립학회에 모여 비만을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할지 논의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들은 비만의 원인에 대해 토론한 끝에 "비만을 초래하는 원인에 대한 일치된 합의는 없다"고 결론지으면서, 다만 "비만이 개인적인 책임이 아니라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학자들은 "비만은 개인적 실패가 아니다"라는 것에 동의했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비만율이 크게 높아졌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인류의 유전자에 변화가 일어났다거나 집단적으로 체중 조절 의지를 잃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으름이나 폭식, 나태가 비만을 촉발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없었다. 과학자들은 일반적 상식과는 반대로, 인간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완벽한 통제력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는 "비만은 식탐과 게으름 탓"이라는 사회적 통념이나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신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보편적인 생각에 반대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만은 훨씬 더 복잡하고 만성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비만을 영양 부족에 따른 고통과 똑같이 취급한 것이다. 학자들은 "비만을 개인 책임의 문제로 다루는 한 비만 유병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극도로 가공한 식품, 가공식품의 화학물질 등도 문제
영양생물학자들은 현대인들이 하루 섭취 칼로리의 상당 부분을 '극도로 가공한 식품(ultra processed food)'으로 채운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극도로 가공한 식품을 섭취하면 동일한 양의 영양성분이 담긴 자연식품을 섭취했을 때보다 살이 더 잘 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생화학자들은 가공식품에 든 화학물질을 문제 삼았다. 식품에 들어있는 첨가물, 용기 제작 등에 쓰인 물질 등이 신진대사를 방해하는 독소로 작용하면서 비만을 촉진한다는 설명이다. 생리학자들은 가공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이 유기농 식사를 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체중도 더 무겁다고 지적했다. 내분비과 의사들은 과도한 칼로리 섭취가 지방을 늘린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많이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적게 먹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한 생태학자는 동물들의 경우,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칼로리 섭취가 부족해도 더 많은 지방을 축적한다고 지적하면서 사람도 마찬가지로 기아로 인한 비만 패러독스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예외 없이 비만의 원인이 매우 복합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비만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상호작용해 발생하며, 비만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유전자 및 돌연변이는 1000개가 넘는다는 사실에 다들 주목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비만이 생각보다 복잡한 메커니즘을 거쳐 우리 건강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한편 연구자들은 "비만 예방을 위해 '채소를 더 먹어라'라거나 '운동을 하라'는 조언을 하는데 이건 마치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비행기를 덜 타라'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뇌종양에 걸려서 과도한 비만이 된 사람을 두고 의사가 몇달 동안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하라고 한 사례가 언급되기도 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삼전·닉스, 공부 못한 애가 갔는데"…현대차 직...
전문가들은 비만을 그저 개인적 문제로 치부한다면 사회적 비난과 차별, 잘못된 정책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비만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기 전에 정크푸드 마케팅을 제한하고, 학교에서 자판기를 제거하며, 걸어 다니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 등 환경과 시스템에 더 주목해야 전 세계적으로 비만율이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