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시절 얘기다. 텍사스주 오스틴 도심 6번가에는 유명한 문화거리가 있다. 이곳은 흑인 블루스 음악의 본거지라 불리울 만큼 명성이 높아 각지에서 모여든 인파로 북적거리는 장소이다. 당시도 할로윈 시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늦은 저녁 지인들과 식사를 마친 후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사거리를 끼고 우회전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자 갑작스레 요란한 불빛의 사이렌을 켠 경찰차가 내 뒤를 쫒았다. 황급히 차를 세우자 경찰이 다가왔다. 내 차가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실시간 감시 행정 시스템에 적잖이 놀랐다.
20년 후 대한민국 서울. ICT(정보통신기술)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도심 한복판인 이태원에서 무수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첨단 CCTV(폐쇄회로TV) 감시 시스템은 개인이 저지른 과속 신호 위반 범칙금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는데, 다수의 군중이 수시간 동안 좁은 골목길에서 사투를 벌이던 곳에 그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은 왜 없었을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지난 5일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재발 방지 및 대책 마련을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이번 참사의 원인은 도시 인프라 관리 시스템의 미흡과 인력에 의존한 응급 상황 관리의 한계가 빚어낸 결과라는 판단이다. 이번 참사를 기회로 도심지 재난 관리 시스템의 원할한 작동 여부를 원점에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서울 강남역 인근 집중호우로 인한 도시 기능 마비 현상이 불과 몇개월 전 일이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대형 재난 여파에도 불구하고, 도시 인프라 관리 수준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70·80년대 국토종합 개발계획에 의한 집중 투자로 인해 이미 선진국 반열에 진입했다. 앞으로는 신규 SOC(사회간접자본) 등 인프라에 대한 투자보다는 기존 인프라의 지속적 관리에 치중해야 할 시점이다. 따라서, 국토교통 R&D(연구개발) 투자의 우선순위가 달라져야 한다. 기존의 생산기술 중심에서 관리기술 중심으로 옮겨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건설산업도 첨단 융복합 기술 기반의 창의적 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 국토교통 분야 연구는 타 분야와 동일하게 특허나 논문 등 원천기술 개발을 핵심성과로 관리해 왔다. 이보다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응용기술, 활용기술 중심으로 성과를 관리해야 한다. 대도시 재난관리, 안정적인 주택 공급, 주거 환경 질 충족, 산업 경쟁력 확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존의 연구개발 투자 전략을 원점에서 재점검하고 투자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전략이 마련돼야 한다.
지난 정부의 국정과제로 집중 투자가 이뤄진 스마트 시티는 국토교통분야의 대표적인 신산업 육성 기술 중 하나이다. 그동안 막대한 예산이 이 분야에 투입되었으나, 과연 그에 걸맞는 연구성과가 나왔는지는 의문이다. 원천 기술 중심이 아닌 문제 해결 중심의 연구주제를 발굴해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국가적인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차원의 국토교통분야 R&D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기존의 성장 중심에서 관리 중심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는 스마트 시티를 만들어나가는 데 정부가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국민들은 더이상 스튜핏(stupid) 시티에서 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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