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실 프로젝트 기획전 'find and found'
폐전선·비닐봉지·데오도란트가 만든 공실의 시간
빛과 습기, 냄새와 진동이 건물을 다시 깨우는 전시

천장에는 사무실의 형광등과 환풍 덕트가 그대로 남아 있다. 벽은 흰색이지만, 흰 벽의 중립성은 없다. 바닥에는 전선과 모래, 거즈, 나무 각재, 철 구조물, 선풍기와 어항, 데오도란트의 냄새가 흩어진다. 이 전시는 빈 공간을 채우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어 있다고 믿어온 공간 안에 무엇이 이미 남아 있었는지를 묻는다.

공실 프로젝트 기획전 'find and found' 전시 전경. 공실 프로젝트

공실 프로젝트 기획전 'find and found' 전시 전경. 공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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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6층짜리 공실을 임시 점유한 공실 프로젝트의 기획전 'find and found'는 제목 그대로 '찾기'와 '발견' 사이에 놓인 전시다. 그러나 이 두 단어는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다. 찾기는 의도와 방향을 가진 행위다. 발견은 의도 밖에서 다가오는 마주침이다. 이 전시의 흥미는 그 차이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차이가 실제 건물 안에서 어떻게 물질과 냄새와 소리와 빛으로 바뀌는지 보여주는 데 있다.


공실은 흔히 잠시 멈춘 부동산의 상태로 읽힌다. 이전 세입자는 떠났고, 다음 세입자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시간. 하지만 이 전시에서 공실은 중립적인 빈방이 아니다. 사무실, 탕비실, 휴게실로 쓰였던 공간의 용도는 사라졌지만, 공간의 습관은 남아 있다. 하얀 벽, 노출 천장, 창가, 계단, 수납장, 지하 복도는 작품을 거는 배경이 아니라 작품을 밀어내고 붙잡는 힘으로 작동한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러 간다기보다, 건물의 남은 감각을 통과한다.

이연진의 거즈는 그 통과의 첫 장면을 만든다. 작가는 반투명한 거즈를 회화의 표면처럼 다루되, 그것을 캔버스 안에 붙잡아두지 않는다. 건물 외벽과 실내외를 가로지르는 거즈의 선은 부드럽고 연약하다. 그러나 그 연약함은 오히려 건축의 단단함을 드러낸다. 시멘트와 스틸, 벽돌과 덕트가 버티는 공간 속에서 거즈는 매달리고 묶이고 의지하며 잠시 머문다. 회화가 벽에서 떨어져 나와 건물의 몸에 기대는 순간, 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점유의 방식이 된다.

공실 프로젝트 기획전 'find and found' 전시 전경. 공실 프로젝트

공실 프로젝트 기획전 'find and found' 전시 전경. 공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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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영은 더 낮은 곳을 본다. 그의 관심은 도시를 떠도는 비닐봉지와 그 비닐봉지가 잠시 머문 자리다. 공실 곳곳에 놓인 모래 텍스트와 사진, 관찰 보드는 버려진 사물을 폐기물로 단정하지 않는다. 길모퉁이, 계단 아래, 담벼락 옆, 주차장 구석을 지나간 비닐봉지는 도시의 하찮은 부스러기가 아니라 이동과 정지, 바람과 표면, 관리와 방치가 만나는 임시적 존재가 된다. 손배영의 작업은 작고 느리다. 하지만 바로 그 느림 때문에, 도시가 너무 빨리 쓸어내는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홍다린의 '불안줄'은 이 전시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몸의 감정을 건드린다. 폐자재, 밧줄, 호스, 각재, 전선이 엉킨 구조물은 불안을 설명하지 않고 불안의 형태를 만든다. 불안은 여기서 내면의 심리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바닥을 기고, 벽에 기대고, 그림자를 만들고, 공간의 한쪽을 점유한다. 특히 공실에 남아 있던 전선 줄을 끌어들인 방식은 이 작업을 개인적 고백에서 장소특정적 구조로 옮긴다. 작가가 말하는 '선'은 점처럼 분류되는 존재를 거부하는 연결의 감각이다. 이 전시에서 그 선은 아름답기보다 집요하고, 정돈되기보다 살아남으려 한다.

배윤재가 맡은 4층은 실험실에 가깝다. 레이저 수평기, 거울, 돋보기, 제습기, 유리어항, 여과기, 열화상 카메라 같은 사물들은 미술관보다 장비 창고나 임시 연구실에 더 어울린다. 그러나 배윤재의 작업은 바로 그 비미술적 사물들을 통해 빛, 습기, 열, 먼지 같은 보이지 않는 조건을 감각의 표면으로 끌어낸다.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무엇이 보이게 되었는지를 의식하게 된다. 시각은 더 이상 눈의 문제가 아니다. 습도와 반사, 온도와 빛의 각도까지 개입하는 복합적인 사건이 된다.

권영환, _Belle Epoque_snowing_, 2025, 비디오 5_07min, 챔버, 서울 복구된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된 구멍난 클립들. 공실 프로젝트

권영환, _Belle Epoque_snowing_, 2025, 비디오 5_07min, 챔버, 서울 복구된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된 구멍난 클립들. 공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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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환은 이 전시의 여러 층을 가로지르며 공실의 시간을 가장 집요하게 건드린다. 과거 전시장의 가벽과 페인트 덩어리, 말라붙은 커피잔, 공실 안팎에서 발견한 사물, 머리카락, 비누 조각, 빈집 사진, 데오도란트는 하나의 작품군으로 정리되기보다 서로 다른 층에서 느슨하게 반복된다. 권영환에게 공실은 장소라기보다 상태다. 이미 지나간 사용의 흔적,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다음 사용의 가능성, 전시 기간 동안만 허락된 임시적 현재가 겹친다. 특히 5층의 '화이트노이즈'는 흥미롭다. 깨끗함을 가장한 향은 사람의 체취를 지우면서 동시에 누군가 있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냄새는 비어 있는 방을 가장 즉각적으로 배반한다.


지하 1층의 전형배와 금지수는 이 전시의 방향을 시각에서 청각으로 돌린다. '둥지'는 철 구조물과 서브우퍼, 익사이터 스피커, 앰프 등을 통해 지하 공간을 진동의 장소로 바꾼다. 여기서 소리는 배경음악이 아니다. 도시의 잔해가 가진 밀도와 형태가 몸으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관람객은 작품을 정면에서 바라보기보다, 복도를 지나며 소리의 압력을 느낀다. 전시의 마지막 감각이 눈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점에서, 이 지하 설치는 공실이라는 장소의 물리성을 가장 단순하고도 강하게 붙든다.


이 전시의 장점은 여섯 작가의 작업을 '신진작가 소개전'처럼 병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각 층은 독립된 방이면서도 서로 다른 감각의 장치로 이어진다. 1층의 모래와 거즈, 2층의 전선과 불안, 3층의 관찰과 잔해, 4층의 빛과 습기, 5층의 냄새, 지하 1층의 진동은 공실을 하나의 수직적 산책로로 만든다. 관람 동선은 위아래로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도시가 남긴 것들을 점점 다른 감각으로 번역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전형배와 금지수, Nest, 2026. 공실 프로젝트

전형배와 금지수, Nest, 2026. 공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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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시의 개념은 때때로 친절하게 앞서간다. '찾기'와 '발견'이라는 틀은 명료하지만, 몇몇 작업은 그 개념의 설명을 벗어날 때 더 강해진다. 이 전시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순간은 작가 노트의 문장이 아니라, 어두운 방의 전선 그림자, 밝은 사무실 한가운데 놓인 낯선 장비, 지하 복도를 흔드는 낮은 진동, 빈방에 남은 인공 향이 관람객의 몸에 먼저 닿는 순간이다. 말보다 공간이 먼저 작동할 때, 'find and found'는 기획어가 아니라 체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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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전시는 공실을 전시장으로 바꿨다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전시가 공실을 다시 공실로 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비어 있는 방은 아무것도 없는 방이 아니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물건은 남고, 냄새는 남고, 빛은 각도를 바꾸며 들어오고, 소리는 벽과 바닥을 타고 움직인다. 도시는 늘 새 건물을 세우고 오래된 흔적을 지운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은 때로 그 지워지는 틈에 잠시 들어가, 사라진 줄 알았던 감각의 주인을 바꿔놓는다. 'find and found'가 발견한 것은 작품 이전에, 비어 있다는 말의 허술함이다. 전시는 6월 14일 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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