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發 채권시장 위기
한은도 대책 내놓을 의무

[논단] 돈맥경화…한은 대책 동반돼야 불길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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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입니다…!" 우리나라의 회사채 시장이 거의 마비 상태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우수한 등급의 채권 단기물조차 헐값에 내놓아도 매수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강원도가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발행한 2050억원어치 채권의 보증을 기피한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한 이후 무려 500조원에 육박하는 대한민국 회사채 시장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금융위기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단기회사채 유통 등 신용 시스템의 기반 위에서 운영되는 비은행 금융사들은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국채 등 그나마 유동성 있는 알토란 같은 자산들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매도하며 큰 손실을 보고 있다.

강원도 문제는 채무자 스스로가 채무상환 능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불가피한 조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사업이 어려워지자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스스로 도장을 찍었던 보증계약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고의적인 상황 같은 것이다. 일단 보증 의무를 한 뒤 어렵다면 강원도 스스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것이 원칙이다. 시장에서는 이런 일방적인 계약 파기 상황을 대비하지 못한다. 최근 큰 폭의 금리 인상으로 온갖 어려움을 힘겹게 버티고 있던 증권·금융시장 시스템은 결국 이 문제가 방아쇠 역할을 하며 큰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의 미지근한 대응도 의아했다. 지방정부의 보증도 못 믿는 판에 금융기관들의 보증을 어떻게 믿겠는가. 강원도 사태가 발생한 즉시 ‘보증계약을 했다면 일단 지켜야 한다’는 당연한 일침을 가한 뒤 재빨리 대책을 실행해 국내에 발행된 막대한 규모의 신용채권으로 불똥이 퍼지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 불길이 급속도로 번져 일부 기업들의 흑자부도설 같은 아우성들이 터져 나오자 금융당국은 지난 21일 물 한 바가지 끼얹는 식의 소극적인 대책을 내놓았고 시장 혼란은 가중됐다.

천만다행으로 23일, 휴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 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불길을 잡을 수 있는 고강도 대책을 내놓았다. 시장의 예상을 넘는 대규모의 금융안정기금을 조성하는 식이라 상당한 효과가 예상된다.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경영이나 투자를 잘못해서 도산하는 것까지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평소 이익도 잘 내고 적절한 위험관리를 하던 기업이 단기간 시스템이 마비된 이유로 도산하게 되는 일만은 철저히 막아야 할 의무가 정부에 있다. 신호등이 고장 나 교통대란이 일어났을 때 재빨리 교통순경들이 등장해 차량 통행을 안내하는 것처럼.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휴일, 마치 교통대란에 나타난 다수의 교통순경을 보는 것처럼 환호했을 것이다.


작금의 상황에서는 당연히 한국은행도 대책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 거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돈을 방류하던 수문을 닫고 있다.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댐의 수문을 닫을 때는 행여 식수마저 부족할 때의 대책이 있어야 하듯이, 통화 긴축을 할 때는 꼭 필요한 경제활동에 돈이 말라버리는 경우를 위한 대비책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그런 대비책들을 실행할 때다.


몇해 전 코로나19 발생 위기 때 적극적으로 실행했던 금융기관들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이나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등 한국은행의 대책이 이번 정부의 대책과 동반돼야 금융시스템 마비라는 확실한 불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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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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