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르포]혼란의 미얀마…그래도 '88세대'에 희망 있다
쿠데타와 코로나 이후 환율 폭등…에너지 수급난
민주인사 꼬꼬지 "군부 인정하고 연방제로 가야"
"한국 등 아시아 국가 관심 필요"
[아시아경제 ] 2020년 이후 2년 만에 찾은 미얀마 양곤의 풍경은 외지인의 눈에 꽤 살벌해 보였다. 예전엔 흔치 않았던 총을 든 군인들과 빈곤한 표정의 부랑자들을 시내 한복판은 물론이고 거리 곳곳에서 쉽사리 마주친 것이다. 전기 상황도 불안정해 수시로 정전이 되고 당연히 인터넷도 먹통이 되었다. 극심한 내부 혼란으로 인해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이어 해외 투자자와 기술진이 대거 빠져나가며 불거진 후폭풍이었다.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민족민주연맹(NLD) 정부가 2020년 11월에 치러진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정권이 5년 더 연장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의회 개원을 앞둔 이듬해 2월 1일 새벽, 민 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이 이끄는 군부가 부정선거를 이유로 쿠데타를 벌여 지난 10년간의 정치개혁을 삽시간에 없던 일로 만들었다.
쿠데타 후 상하원은 즉시 해산되었고 대부분 언론 및 정치 활동이 금지되었다. 이에 저항한 청년들과 시민들은 불복종 운동(CDM)에 나섰고, 정치인을 중심으로 해외망명정부(NUG)가 꾸려졌고, 다시 이들과 소수민족 세력이 연대해 국경 지역에서 군부에 대항하는 시민방위군(PDF)이 창설되었다.
여기까지라면 그나마 상황이 정치 갈등만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쿠데타와 시민들의 거리 시위로 인해 코로나19 방역 시스템이 삽시간에 망가진 것이다. 인도에서 시작된 델타 변이가 인접한 미얀마에 몰아닥치며 2021년 하반기 미얀마는 아수라장에 가까운 지옥도가 펼쳐졌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죽었는지 유의미한 통계조차 집계하기 힘들었다. 외부에서 상상하는 숫자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시민들의 이동이 강력하게 통제된 덕에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환율 폭등=쿠데타와 코로나라는 두 가지 태풍이 할퀴고 지나갔다고 해도 사람이 사는 곳의 풍경은 어디나 흡사했다. 대다수 주민은 일상으로 복귀해 생계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직장인들과 공무원들도 제자리로 돌아갔고 대학생들은 나빠진 국내 경기를 고려해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았다. 양곤과 만달레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치안과 행정력이 거의 복구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간간히 저항군과 군부의 마찰 뉴스가 나오긴 했지만, 이제는 정치보다는 시민들을 괴롭히는 문제는 전기, 인터넷, 환율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제재로 인프라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가 뒤틀린 탓이다. 더운 나라에서 전기가 끊긴다는 것은 냉장고가 멈춰 식재료를 장기간 보관할 수 없는 불편으로 이어진다. 단전과 단수뿐만 아니라 군부 정권이 시위대를 막기 위해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의 해외 인터넷 서비스를 통제하는 것도 외부인 입장에선 심각한 불편이었다.
경제가 고립된 제 3세계가 겪는 다음 수순은 화폐 가치의 폭락이다. 미얀마 화폐인 짯(Kyat)은 2020년 이전엔 달러 대비 1500짯을 유지했지만, 2021년 쿠데타 이후엔 2000짯을 훌쩍 넘겨 버렸다. 환율은 꾸준히 상승해 최근엔 암시장에선 3000짯에 근접하고 있다. 획기적인 정치 타협안이 제시되지 못한다면 3500짯이 아니라 그 이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미얀마 경제계의 공통된 우려다.
미얀마는 신남방정책 이전부터 꾸준하게 우리 정부의 투자 대상 지역이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의 접점에 선 미얀마의 지정학적인 가치와, 특히 한류에 남달리 애정을 가진 미얀마 젊은이들의 미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토지주택공사 LH는 양곤 인근에 대규모 산업공단을 분양할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었고, 코이카는 한국의 경제개발의 근간이 된 KDI(한국개발연구원) 모델을 차용한 MDI를 수도 넷피도에 만들어 협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후 이들 사업은 무기 연기되었다. 3000명이 넘어 5000명을 바라보던 교민사회도 1000명대로 크게 줄었다.
▲봉제업의 호황=한가지 다행인 점은 한인들이 주로 종사하는 봉제업 분야는 예기치 않은 수혜를 보았다는 점이다. 미얀마와 인근 방글라데시는 세계적으로 봐도 가장 낮은 인건비를 지닌 탓에 일찌감치 노동중심 봉제업이 중심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쿠데타 이후에는 노조활동이 금지돼 임금인상 요인도 사라졌다. 환율까지 폭등하는 바람에 주로 달러로 대금을 받고 짯으로 임금을 주는 업체들은 예기치 못한 수혜를 입었다. 예전엔 매달 200달러를 주고 노동자를 고용해야 했다면, 이제는 100달러로 충분해진 것이다. 국제제재에서 이 분야가 제외된 덕분이다.
현지 한인봉제협회가 발행하는 ‘실과 바늘’의 전창준 편집장은 “미얀마는 전기와 도로 등의 인프라는 최악에 가깝지만, 인건비 경쟁력이 워낙 높아 봉제나 의류업은 정치적 악조건 속에서도 긍정적 전망을 보인다”고 답했다. 올해는 대형 의류업체들까지 미얀마에 공장 신설을 추진 중이다.
의류·봉제업이 반짝 호황을 누린다고 하지만 정치안정이 없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거리 곳곳에서 군부는 절대권력을 유지하고 싶고 시민은 자유로운 환경을 다시 원한다는 모습을 빈번하게 확인했다.
버마 역사 최대의 민주화 운동은 1988년 8월 8일에 이뤄진 이른바 ‘8888 운동’이다. 그해 양곤에서만 5000명 가까이 사망했을 정도로 치열하게 민주화 운동이 벌어져 네윈 정권을 거의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어 발생한 신군부 주도의 9월 쿠데타는 역으로 민주화 세력이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이후 부각된 세력이 88세대 대학생들과 아웅산 수찌 여사다. 지난 정권을 이끈 아웅산 수찌는 이제는 고령으로 부활이 어렵게 되었기에 이제는 다시금 88세대 역할론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주목받는 88세대=어렵사리 미얀마 제3의 정당인 인민의 당(People’s party)을 이끄는 꼬꼬지(Ko Ko Gyi, 61) 의장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 역시도 19년 가까이를 옥중에서 보낸 민주화그룹의 핵심인사다. 다만 아웅산 수찌와의 갈등으로 2016년 NLD 정부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수찌 이후의 정치를 그려온 게 특징이다. 최근엔 해외에서 기대가 더 크다. 올해초 아세안이 미얀마에 특사를 파견했을 때 수감된 아웅산 수찌를 만나지 못하자 대신 꼬꼬지를 만나고 돌아왔다. 양곤에 남은 가장 대표적 민주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왔다는 필자를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했다. 꼬꼬지는 “군부를 무너뜨리고 아웅산 수찌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주장만으론 안된다. 군부의 현실적 힘도 인정하고 이를 활용해 진정한 연방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내세운 핵심 주장은 중앙집권이 아닌 지방분권형 연방제다. 대통령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소수민족에게 자치권을 충분히 주는 연방제 헌법을 놓고 군부와 충분히 협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아웅산 수찌가 실패한 원인이 군부와 버마족 중심의 대통령제 개헌을 고집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이어 “저를 포함한 많은 88세대가 ’전환기 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60년간 미얀마를 지배한 군부는 당연히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군부를 싫어한다고 그들의 힘이 금새 사라지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세력은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대통합 정부, 즉 기존 관료와 소수민족, 또 전문가를 충분히 기용해 쿠데타를 미리 방지했어야 했다. 나는 여전히 미얀마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민주주의와 연방제를 복원해 낼 것입니다. 한국인들도 우리에게 관심을 잃지 말아 달라”고 했다. 미얀마 문제를 풀기 위해선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관심과 투자가 꼭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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