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젊은 경관들의 냉소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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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일터인 서울경찰청을 드나들며 수 많은 경찰들과 마주친다. 기자실 건너편으로 112요원대기실이 있어 MZ세대 경관들과 종종 담소를 나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겠지만, 그들의 표정과 말투가 그리 밝지 않다. 경찰이 각종 논란에 휩싸인 탓도 있겠지만 최근 한 보고서를 보며 그 표정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경찰대학 부설 치안정책연구소가 이달 초 낸 160여 페이지의 ‘한국 경찰의 개인 및 조직 특성’이란 보고서다. 경찰조직의 10%에 이르는 1130명의 의견이 반영됐다. 조사에 응한 이들은 대부분 치안 현장을 누비는 20~30대 순경 경장들, 기자가 매일 마주치는 그들과 같은 연배다. 공정 이슈에 민감한 MZ세대 답게 불공정에 대한 문제 의식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경찰조직 내 주요 보직은 업무 성과가 아닌 인맥에 달려있다’는 문항에 응답자의 절반(49.4%)이 ‘그렇다’고 답했고, ‘그렇지 않다’는 14.9%에 불과했다. ‘조직 변화에 대한 좋은 의견을 제안해도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항에서도 ‘그렇다’는 답변이 42.0%에 달했다. 반면 ‘그렇지 않다’는 14.2%에 그쳤다.


조직의 미래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조직내 지휘부들은 열정적이지 않다’는 문항에 42.2%가 ‘그렇다’고 했고, ‘조직의 미래는 희망적이지 않다’는 응답도 36.2%나 됐다. 경찰의 조직 운영이 불공정하고 내부 소통이 단절돼있다는 불만이 만연한 것이다. 민주화를 거치면서 사회 각 분야가 한층 공정·투명해 졌고, 경찰조직 또한 자정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지만 구성원들의 눈높이엔 여전히 역부족인 셈이다.

외부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작년 연말 발표한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경찰은 최하위인 ‘5등급’이었다. 중앙행정기관 47곳 가운데 5등급 성적표는 경찰청이 유일하다. 내부청렴도는 3등급이었지만 일반 국민들의 평가를 반영한 종합청렴도에서 최하위로 밀렸다.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경찰의 부패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가늠할 수 있다.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객관성 없는 평가 잣대가 한 요인이다. 현재 경찰 보직 관리는 주로 인사권자의 주관적 평가, 인간적인 관계, 친밀도가 강하게 작용한다. 승진이나 인사 이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근무 평점을 제멋대로 줘도 견제할 마땅한 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인사철이면 고위층에 줄을 대고 인맥을 동원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 고위 간부들은 대통령실이나 여당 등 권력층을 통해 청탁을 하기 일쑤다. "업무 능력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사람은 승진에서 누락되고 정권과 가까운 사람이 영전한다"는 말이 최근 고위직 인사에까지 나왔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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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어떤 조직이든 운영의 요체는 ‘신상필벌’이다. 공로에 걸맞은 상을 주고 능력에 어울리는 자리를 주고 잘못에 상응한 벌을 내리는 일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기강이 해이해질 수 밖에 없다. 아울러 조직의 활력은 떨어지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기 마련이다. 엄정한 기강을 바탕으로 법질서를 바로잡아야하는 경찰로서는 치명적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 없이 사회 정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다. 경찰은 사기를 먹고 사는 조직이다. 구조적 난맥상을 뜯어고치지 않고선 내일 마주칠 MZ경찰들의 밝은 표정을 보긴 어려울거 같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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