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망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도 큰 변화가 없던 한일 관계에 메가톤급 변수다. 아베 전 총리가 한국과 북한을 절묘하게 이용해 성공한 정치인이었다면 윤 대통령도 그래야 한다.
아베 전 총리는 정치 인생 굴곡점마다 한국과 북한을 이용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를 수행해 북·일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했을 때다. 그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인들의 눈에 들었다. 이후 아베는 2007년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올랐지만 1년 만에 낙마했다. 절치부심한 그는 2012년 2차 집권 후에도 북한 때리기에 주력했다. 납치는 여전히 단골 메뉴였다. 오죽했으면 ‘납치의 아베’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을까.
2017년 아베는 위기를 맞았다. 자신의 추문과 소비세 인상 여파로 인해서 지지율이 급락하자 조기 총선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이때는 ‘북핵’이 레퍼토리였다. 결과는 예상과 달리 압승이었다. 북한이 일본의 눈치를 볼 일도 없지만 일본 유권자들은 안보를 앞세운 아베에게 표를 몰아줬다. 당연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가 추진했던 위안부 합의 파문에 이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오며 경색된 한일 관계는 끝내 사망 시까지도 개선되지 않았다. 아마도 아베가 관계 개선을 희망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대(對)한 강경 정책 역시 그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였다.
아베가 한국과 북한을 정치에 이용했다면 윤 대통령도 그래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운 윤 대통령이 직접 조문을 위해 방일해야 한다. 한덕수 총리의 조문 방문으로는 부족하다. 일본도 조문을 위해 방문하겠다는 주변국 정상 입장을 거부할 명분도 약하다. 어차피 관계 개선을 하려면 대통령이 직접 방일을 통해 확실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달 한일 정상이 모두 참석한 채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도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서먹서먹할 수밖에 없었다. 기시다 총리가 총선을 앞두고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꺼렸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기시다 총리의 상황도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눈치를 볼 ‘상왕’ 아베도 없다. 아베의 충격적 사망 소식은 10일 치러진 총선에서 기시다 총리와 자민당에 안정적 의석을 남겼다. 기시다 총리가 ‘탈 아베’ 정책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기시다 총리가 곧바로 아베의 유산을 청산하기는 어렵지만, 방향 전환에 대한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아베가 추진했던 돈 풀기와 엔저를 통한 수출 확대를 근간으로 하는 ‘아베노믹스’는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기조에 어긋나며 일본 경제를 흔들고 있다. 정치인이 국민의 불만이 커지는 사안을 언제까지 끌고 나갈 수는 없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외교는 다르다.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 오히려 더욱 강경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자칫 일본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런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는 게 진정한 외교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가 한일 관계를 파탄 냈다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때다. 새 사람들이 시간을 끌 필요도 없다. 인플레에 기반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임박했다는 경고가 속속 이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우군을 늘리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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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민 오피니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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