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니즘의 위력' 과반 붕괴 마크롱, 트럼프에 밀리는 바이든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소시지를 살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내 월급을 넘어섰다.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플레이션이다."
프랑스 총선이 실시된 19일(현지시간) 파리 근교에 거주하는 40대 유권자 파브리스 벨리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장 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가 이끄는 뉘프의 후보에 투표했다.
프랑스 총선의 판도를 결정한 것은 고통스러운 물가였다. 이번 총선에서 중도 성향의 범여권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침묵했다. 대신 지난달 30년 만에 처음 탄생한 여성 총리 엘리자베트 보른이 전면에 나서 "유례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번 선거 결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고 목소리를 냈다.
◇"우크라戰 보단 물가"… 유권자 마음 못얻은 마크롱
지난 4월 대선 승리 이후 마크롱 정부는 물가 이슈에 발빠르게 대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지난 4월 대선에 비해 총선을 앞두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관심이 더 확대됐다. 반면 멜랑숑 대표는 필수 생활비 동결, 최저 임금 인상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이포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순위 5위 내에 물가 관련 이슈인 구매력(2위)과 에너지 가격(4위)이 포함됐다. 에너지 가격의 경우 두 달 전 6위에서 순위가 올라간 것이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이 강조해온 안보 이슈는 3위에서 5위로 내려갔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는 이날 "프랑스인의 첫번째 관심사는 구매력"이라며 인플레이션 문제를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교·국방 이슈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보른 총리는 국내 인플레이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사실상 대리 선거전을 치렀다. 임명된 지 11일 만인 지난달 27일 보른 총리는 차기 정부의 우선 순위로 생활비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돌아선 유권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늦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 결과로 마크롱 2기의 최우선 순위는 물가 안정에 더욱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간 가디언은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패배로 이번 여름 핵심 법안 통과를 압박하기 위한 동맹 맺기를 어떻게 해나갈지 불확실성에 직면했다"면서 "첫 번째로 생활비의 위기에 놓여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새로운 지원금과 연금 인상, 세금 감면 등을 약속했고 이제 의회 앞에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가 때문에" 美·日·濠·英 정계도 고민 커져
물가가 정권의 명운마저 흔들면서 인플레이션은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7~19일 치러진 여론조사 결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내각의 지지율이 60%로 전월 대비 6%포인트 하락했다고 전헀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물가 관리 대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이 69%로 전월 대비 8%포인트 올랐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나 엔저 현상 등으로 물가상승을 ‘허용할 수 없다’는 답변이 64%로 높은 상황에서 정부의 대책에 대한 불만이 컸고 지지율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가상대결에서 패배한다는 결과를 처음 받아들었다. 응답자 10명 중 6명은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운용 방식에 불만을 드러내 물가상승에 따른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줬다. 인플레이션은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 선거를 앞둔 민주당의 최대 과제로 떠오른 상태다.
지난달 호주에서는 노동당이 스콧 모리슨 총리가 이끄는 자유·국민 연합을 제치고 8년 9개월 만에 정권을 교체했다. 당시 호주 물가는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고, 코로나19 여파로 주택가격도 폭등해 유권자들이 기존 정권에 대한 반감이 큰 상황이었다.
올해 연간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11%로 예상되는 영국에서도 23일 보궐선거를 앞두고 생활비 이슈가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 폴리티코는 "보궐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주요 걱정거리 중 하나가 생활비가 됐다"고 전했다. 최근 불신임 투표에서 가까스로 자리를 지킨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보궐선거 패배 시 자진 사퇴할 수 있어 영국 정치마저 물가 이슈가 뒤흔들 가능성마저 나온다.
◇佛 경제개혁·우크라 이슈 등 여파 불가피
총선에서 패배한 마크롱 대통령은 당분간 내치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그의 친 유럽연합(EU) 행보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 수장인 멜랑숑 대표와 르펜 대표가 EU 회의론자였던 만큼 이들의 영향력이 확대된 프랑스 의회에서 마크롱 대통령에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마크롱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도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등 직접 챙겨왔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대응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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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이 우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정치적 동맹을 구성하는 일이다. 현재로서는 의회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앙상블'만으로는 법안 통과가 불가능해 동맹할 정당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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