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낙태권 초안 유출 일파만파…유출자 색출에 FBI까지 나섰다
미 법원 역사상 초유의 사태
유출자 밝혀져도 처벌 어려워
[아시아경제 조현의 기자] 미국 사회가 사상 초유의 연방대법원 판결문 초안 유출로 발칵 뒤집혔다. 낙태권 보장 여부도 '뜨거운 감자'지만 유출 자체도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에서 대법관의 내부 논의 내용이 정식 발표 전 외부로 유출된 것은 현대 사법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즉각 유출자 색출에 나섰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날 "이번 일은 법원과 직원에 대한 모욕이자 신뢰를 손상하는 극악무도한 일"이라며 유출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초안이 최종 결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유출 조사는 연방수사국(FBI)을 포함해 전면적으로 진행될 방침이다.
미 대법원은 그간 내부 논의에 대해 철통 보안을 지켜 왔다. 하지만 내부 관계자가 민감한 사안에 대한 논의 내용을 유출하면서 대법원에 대한 신뢰도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됐다. 미 정치매체 더힐은 "법원 역사상 가장 놀라운 비밀 유지 위반"이라며 "판사들 사이에 불신을 심어주고 법원의 명성을 손상시킬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번 유출로 법원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칼 토비아스 리치몬드대 교수는 "대법원에 대한 미국인들의 존경심 저하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유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과 같이 이목이 집중되는 판결의 경우 대법관과 법률 사무원은 물론 비서부터 IT 부서 직원 등 다른 지원 인력도 접근권이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 혹은 대법원의 재판연구관이 유출했다는 측에서는 이들이 대법원의 결정 방향을 미리 파악한 뒤 여론으로 뒤집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보수 성향의 대법원 내부 관계자가 유출했을 수 있다는 측에서는 이번 결정에 따른 파급효과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논란의 초점을 유출 자체에 돌리려 했다고 본다.
법원 결정에 대한 대중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혹은 '낙태할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에 참여하기를 망설이는 다른 대법관을 압박하기 위해 미리 내용을 흘렸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리처드 하센 UC어바인 교수는 NYT에 "유출자가 '낙태할 권리' 옹호자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면서 "절차적 정당성, 대법원의 기밀 유출 등으로 논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면 오히려 '낙태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판결을 뒤집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출자가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처벌 규정이 없다. 기밀을 공개하는 것이 불법이 될 수 있지만 내부 문건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범죄인지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아리 레드보드 전 연방검찰관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번 사건이 사법절차의 완전성을 위태롭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밀 정보의 유출로 특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스티븐 블라덱 텍사스대 교수도 워싱턴포스트에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초안을 입수하지 않는 한 언론에 흘린 죄목이 무엇인지 특정하기 어렵다"며 "수사를 안 할 수는 없지만 특정 범죄로 기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건의 초점을 각기 다른 곳에 두고 있다. 민주당은 낙태권을 보장하는 판례를 폐기하기로 했다는 내용 자체를 문제 삼는 반면 공화당은 초안이 유출된 경로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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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내부 관계자로부터 초안을 확보해 이를 처음 보도한 폴리티코는 자화자찬했다. 폴리티코 직원들은 자사 보도를 받아쓴 다른 언론사들의 기사들을 공유하며 "(우리 보도가) 방송사의 헤드라인과 뉴스 웹사이트를 지배했으며 트위터까지 장악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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