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산불, 사람뿐 아니라 동물 터전도 위협한다 [안녕? 애니멀]
초대형 산불,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재앙
반려견들, 미처 탈출 못하고 타 죽거나 질식사
야생동물은 서식지 파괴돼 멸종위기 몰리기도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이달 초 경북·강원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초대형 산불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가혹한 자연 재해였다. 민가까지 퍼진 불길을 미처 피할 수 없었던 반려 동물들이 치명적인 화상을 입는가 하면, 주인과 떨어져 떠돌이 신세가 되기도 했다. 야산에 서식하던 야생 동물 또한 고통을 겪은 것은 마찬가지다. 초대형 산불은 동물 개체 수를 줄일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파괴하기 때문이다.
◆민가까지 위협하는 화마…사람뿐 아니라 반려동물에게도 고통
경북 울진, 강원 삼척 등에서 일어난 산불은 지난 13일 오전 9시께 가까스로 진화됐다. 처음 불이 시작됐던 지난 4일 이후 약 210시간가량 소요됐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주택 319채와 농·축산 시설 139개소, 공장과 창고 154개소 등 총 643개소가 소실됐다. 산림 피해도 역대 최대 수준에 근접했다. 울진16만8463헥타르(ha), 삼척 2460ha 등 모두 2만923ha의 산림이 불탔다. 지난 2000년 4월7일부터 15일까지 동해안 산림 2만3000여ha를 불태운 산불 이후 역대 2위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재민이 118명 발생했고 민간 시설도 다수 훼손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산불이 발생한 인접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피해 수습, 복구, 이재민 지원 등에 국가 차원의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그러나 화재가 피해를 준 건 사람뿐만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 섞여 살던 동물들 또한 화마로 인해 고통받았다.
일례로 지난 6일 동물권단체 '케어' 등에 따르면, 산불이 거주지역 인근까지 내려오면서 반려동물, 농장동물 등 수백 마리가 죽거나 다칠 위험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케어는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쓴 글에서 "경북 울진 산불로 주민이 급하게 대피하면서 버려진 개들이 '뜬장'에서 불타 죽는 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우리에 갇혀 있다가 불길을 피하지 못한 개들이 타 죽거나, 연기 등을 흡입해 질식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고성리 한 개농장에는 170여마리의 개들이 우리 생활을 하고 있다가, 산불로 8마리가 타거나 질식해 죽고, 10마리는 심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케어는 "개들은 물이 나오지 않아 밥을 굶고 있고, 심한 화상을 입은 개들이 방치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주인 잃은 반려동물이 구조를 받지 못한 채 폐허가 된 마을 주변을 떠돌거나, 이재민보호소에 들어가지 못 해 방치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현행 안전관리기본법, 재해구호법, 동물보호법 등에는 반려동물을 재난 시 구조 대상으로 지정하거나, 재난 대피소 입소를 허가하는 근거가 없다. 또 행정안전부의 재난안전대응매뉴얼에는 구체적으로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주민들이 대피하다가 반려동물을 잃거나, 길 잃은 반려동물이 거리를 떠돌아도 구조해 줄 방안이 마땅히 없는 셈이다.
◆초대형 화재, 야생동물 생태계도 파괴한다
화마로 피해를 본 것은 반려동물·농장동물 뿐만이 아니다. 야생 동물도 초대형 산불로 인해 생명을 위협 받는다. 통상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에는 산불이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나치게 피해 규모가 큰 산불은 생태계의 자정작용 수준을 초과하는 피해를 낳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부터 2020년 초까지 이어진 호주 대형 산불로 인해 화상을 입은 야생 코알라. 호주 코알라는 당시 산불로 인해 서식지의 대부분을 잃고 '기능적 멸종'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9년 말부터 다음해 초까지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를 태운 초대형 산불이다. 호주에는 약 244종의 포유류가 서식하고 있는데, 생태계가 파괴되는 수준의 산불 발생으로 인해 이들의 서식지가 없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개체 수가 적고 특정한 환경에서만 번식할 수 있는 동물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봤다. 약 5만마리의 캥거루가 서식하고 있는 세인트빈센트만 입구 '캥거루섬'이 대표적이다.
호주코알라재단에 따르면, 산불로 인해 2019년 말에만 호주 전역에서 1000마리가 넘는 코알라가 불타 죽었으며, 서식지의 80%가 불타 코알라는 '기능적 멸종' 단계에 들어섰다고 발표했다.
호주 에들레이드대 연구진 또한 당시 "캥거루섬의 코알라는 호주 전체 코알라의 생존을 위한 보험이나 다름 없다"면서 "코알라의 집단 서식지인 빅토리아주 깁스랜드 등지에서도 8000마리 이상이 산불로 목숨을 잃었다"라고 경고했다.
국내 최대 규모 산불이었던 지난 2000년 동해안 산불도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준 바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당시 산불 이후 피해 복원지의 생태계 변화를 20년 가까이 모니터링한 결과를 지난 2019년 발표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산불이 난 후 생태계가 완전히 복원될 때까지 어류 3년, 개미는 13년, 조류는 19년, 경관 및 식생은 20년, 야생동물은 무려 35년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잿더미가 된 토양을 복원하려면 약 100년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2만ha가 넘는 산림을 불태운 이번 산불 또한 야생동물 개체 수를 줄인 것은 물론, 그들의 터전인 토지 회복력을 크게 떨어뜨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는 반려동물·야생동물이 대형 재난 피해에 노출된 것을 인식하고, 이에 대처할 방법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2024년까지의 동물복지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산불, 홍수 등 대량으로 이재민이 발생하는 재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반려동물이 반려인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시설을 구축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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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환경부는 오는 2025년까지 시행될 방침인 '제4차 야생생물 보호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한발·산불 증가를 '야생생물 서식지 파괴'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고, 멸종위기종·철새 등 다양한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동물 및 서식지 자료 축적 ▲지속적인 모니터링 확대 ▲감시-대응 체계 구축 방안 등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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