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대 대선 D-1년 6개월, 대통령과 2인자…(上)'정치 9단' 김영삼 前 대통령의 용인술, '9龍의 시대'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대통령의 '2인자 용인술'에 대해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얼굴)이다. YS는 1990년 3당 합당 과정에서 부산·경남(PK)이 주축인 민주계(상도동계)를 이끌고 대구·경북(TK)이 주류를 형성했던 민정계 본진에 뛰어들었다. 특유의 정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대선 후보는 물론이고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정치 9단'이다.


임기 초기 국정지지율 90%를 내달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YS도 차기 대선(1997년)은 고민의 대상이었다. 이른바 '9룡의 시대'는 YS의 2인자 용인술과 관련이 있다. 9명의 대선주자가 경쟁 구도를 형성하면서 2인자로의 쏠림 현상을 늦추는 결과로 이어졌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는 한국정치의 독특한 현상이다. 다른 나라는 이렇지 않다"면서 "대통령이 5년 단임으로 끝나면서 중앙 집권적인 정치인식을 형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식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가 유족인사를 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2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식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가 유족인사를 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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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선을 쥐략펴락 했던 9룡은 이회창, 박찬종, 최형우, 김덕룡, 이인제, 김윤환, 이수성, 이홍구, 이한동 등 한국 정치사에 이름을 남긴 쟁쟁한 인물들이다. YS 오른팔로 불린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차세대 기수로 평가받았던 이인제 전 노동부 장관을 비롯해 '대쪽'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회창 전 국무총리, TK 맹주로 불린 김윤환·이한동 의원 등 9룡의 면면은 화려했다.

YS는 9룡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을 지켜보며 국정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YS 마음'이 누구를 향하는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대통령이 마음을 얻어야 대선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란의 씨앗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YS가 9룡 중에서 충청 출신의 노동ㆍ인권 변호사인 이인제 전 장관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얘기가 번지면서 정치적 균형도 무너졌다.


자신의 평생 동지인 최형우 전 장관이 중풍으로 쓰러지고,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회창 전 총리가 정치적 탄력을 받으면서 YS 힘은 급속히 약화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킹메이커'로 손꼽히는 허주(虛舟) 김윤환 의원이 대선 레이스에서 하차한 뒤 이회창 전 총리에 힘을 실어준 것은 변곡점이 됐다.


상도동계·TK 등 경쟁시킨 YS…국정 위기 부른 '이인제 낙점설' 원본보기 아이콘


정치인 이회창은 당 대표와 대선 후보, 당 총재 자리를 연이어 차지하면서 여권의 권력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YS 인형 화형식'을 방치했다는 논란과 함께 대선후보 이회창과 대통령 YS 관계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놓였다.


흥미로운 점은 YS가 낙점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인 이인제가 탈당 이후 독자 출마를 선택하면서 정치인 이회창의 대선 승리를 저지했다는 점이다.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는 1997년 대선에서 492만5591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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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YS 정치 텃밭인 부산과 경남에서 각각 득표율 29.78%(62만3756표), 31.30%(51만5869표)를 얻으면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낙선의 원인이 됐다.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39만557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는데 PK 성적표는 이 후보가 박빙의 승부 끝에 패하게 된 주된 요인 중 하나였다는 얘기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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