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만 여섯번…기아차 회장까지 역임한 '진념'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동력자원부, 노동부, 기획예산위원회, 기획예산처, 재경부. 진념 전 부총리가 수장을 맡아 이끈 정부 부처들이다. 여기에 재경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이력까지 더하면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장관을 여섯번이나 지냈다. '직업이 장관인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이보다 더 잘 맞는 사람은 찾기 힘들 정도다.
중학교 시절 도시락을 싸가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 물로 허기를 채우던 그는 자연히 '우리나라가 부자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기도 전인 1962년 21세의 나이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다음해 경제기획원 기획국 사무관으로 관료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에 대해 그는 "행시에 합격했을 때보다 경제기획원 기획국에 들어갔을 때가 더 기뻤다"고 회고한다. '한국 경제를 부흥시키는 주역이 되겠다'는 다짐을 이루는 데 한걸음 다가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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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획원 사무관 시절 그의 별명은 '똘똘이'였다. 우리나라 장기 경제발전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조사ㆍ연구와 함께 이를 토대로 토론하기를 좋아하면서 생긴 별명이다. 이후 '기획원 사상 최장수 차관보'로 일하며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해운항만청장, 경제기획원 차관을 거쳐 1991년 동력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1996년 노동법 파동과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0년대 초로 이어진 실업사태 당시 노동부 장관과 기획예산처ㆍ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내며 정부 정책을 이끌었다. IMF 직후에는 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을 맡아 무보수로 일하며 기아차의 회생과정에 참여했다. 이후 2001년 8월 재정경제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즉, IMF 위기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한국 경제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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