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금융소비자보호법에서 쏙 빠진 알맹이들
전 세계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법제가 강화된 것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이다. 미국은 2009년 이른바 도드-프랭크법을 만들어 금융소비자 보호, 구제금융 남용금지, 금융위험 조기경보시스템, 경영진 보수와 지배구조 개선 등을 진행했고,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와 함께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국(CFPB)을 신설함으로써 이른바 쌍봉형 금융규제체제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늦은 2012년 제18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여러 금융소비자보호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발의만 되고 입법되지 못한 이 법은 20대 국회에 와서야 다시 제출된 정부안을 중심으로 지난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되고, 그 안에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제도가 도입된 것은 다소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속빈 강정 같은 구석이 많다. 우선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신설이 빠져있다. 지난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과 라임사태 등 금융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시중은행의 불완전판매 및 내부통제 부실과 함께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는 금융감독시스템에 대한 많은 지적이 있었다.
정책기능이나 건전성 감독을 위주로 하는 현재 체계로는 금융소비자피해를 예방하기 어렵다. 애초 정부안에도 금융감독원 산하일망정 예산ㆍ인사권 등을 독립적으로 쥔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립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없어졌다. 두 번째 문제는 소비자피해구제절차로 늘 꼽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과된 법안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대신 징벌적 과징금 및 과태료제도가 있는데 이는 정부가 걷는 과징금이나 과태료에 굳이 징벌적인 요소를 가미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이례적 방식이다. 징벌적 요소는 기업의 위법행위에 대한 민사적인 제재를 강화해 소비자 피해 사전예방과 사후구제에 직접적인 기능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했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다액의 피해자는 물론 소액 다수의 금융소비자들이 효과적으로 피해를 보전받을 수 있는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셋째는 입증책임전환 제도도 절반만 도입됐다는 점이다. 손해배상 입증책임과 관련해서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서만 적용되고, 정작 중요한 적합성 원칙 및 적정성 원칙 위반 시 손해배상책임에서는 입증책임이 전환되지 않는다. 설명의무는 상품과 관련한 주요사항에 대해 설명했거나 들었다는 점을 수기나 녹취로 남기는 현실에서 입증책임을 전환하더라도 설명의무 준수를 용이하게 입증할 여지가 크다. 그런데 적합성이나 적정성 원칙은 소비자에 대한 상품 권유나 계약체결이 적정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에 관한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이 소비자 보호에 훨씬 효과적이다.
손해배상액 추정제도도 빠졌다. 금융상품에 따라 그 손실액을 특정하기 어려운 상품이 있다. 전문기관에 투자상품의 가치나 손실액을 평가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피해전보를 어렵게 한다. 일정한 기준을 정해 손해배상액을 추정하고, 이에 불복하는 쪽이 구체적인 입증을 통해 추정된 손해액을 번복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마지막으로 금융상품의 사전등급분류제도 및 판매장소와 대상의 엄격한 분리제도 등이 빠졌다.
모든 금융상품은 위험 등급을 분류해 그에 따라 판매대상 및 장소를 달리해야 한다. 법안에는 일반금융소비자와 전문금융소비자를 구분하고 금융상품도 예금성ㆍ대출성ㆍ투자성ㆍ보장성 상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모두 금융상품의 위험성 평가 및 판매대상의 엄격한 분리를 위한 전제 요소들이다. 그런데 정작 금융상품의 사전등급분류나 판매대상ㆍ장소 분리는 법안에 담겨있지 않다. 시행까지는 1년가량 남았으므로 보완입법을 통해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법이 시행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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