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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인왕시장/허진석

최종수정 2019.11.20 10:16 기사입력 2019.11.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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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두 발은 빳빳이

허공을 받쳐 들고 비명을 지른다.


마지막 고통을 참아 내느라

악다문 바둑이의 희끗한 이(齒)


언제나

일부분은 온전히 남아 있다.


길에서는 원한이 번들거리며

태양 아래 빛나고

말없이 지나치는

시선은 고요하여

물속과 같다.


오래전 멈춘 숨이

가끔 기포가 되어 터진다.

“얼마예요?”


[오후 한 詩] 인왕시장/허진석


■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시다. '그로테스크'란 보통 '기괴한,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흉측한, 우스꽝스러운'이라는 뜻이다. "허공을 받쳐 들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닭의 두 발"이나 "마지막 고통을 참아 내느라" "악다문 바둑이의 희끗한 이(齒)"는 분명 괴상하고 기이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저 "닭의 두 발"이나 "바둑이의 희끗한 이"보다 그로테스크한 것은 어쩌면 그 앞을 "말없이 지나치는" "물속"처럼 "고요"한 우리의 "시선"이 아닐까. 아니, 그보다 죽어서도 "원한"으로 번들거리는 사체들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상품으로 사고파는 이 포악하고 상스러운 세계가 아닐까. 우리는 이 시의 한 문장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일부분은 온전히 남아 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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