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건을 사러 시장에 간다. 살 수 있는 물건은 배추 한 포기부터 건물까지 다양하다. 미술품이 거래되는 시장은 미술시장이라고 하고 여기에도 만드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이 있다. 예술가들은 창작활동을 하고, 화랑이나 옥션은 작품의 거래를 맡는다. 개인 소장가와 기업, 미술관은 작품을 산다.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미술시장도 요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아니, 미술시장은 어느 분야보다도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화랑가 전시를 찾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고 미술품 경매 낙찰 실적도 뚝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개인 소장가들이 미술품을 팔아서 얻는 소득을 '기타소득'이 아니라 '사업소득'으로 분류해 과세강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술시장은 그야말로 혼돈에 빠졌다. 일반적으로 미술품 소장가들은 경매회사에 작품 매각을 의뢰한다. 법적 성격은 위탁매매이며 여기서 발생하는 양도차익을 사업소득으로 간주해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얘기다.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는 두 차례의 탄원서를 내고 "사업소득으로 미술품 과세를 강화하면 당장은 약간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미술애호가들을 미술시장에서 떠나게 해서 장기적으로 큰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정부는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국가의 미래와 정부에 대한 신뢰를 희생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업소득 세금부과를 철회해 달라"고 간구했다.
한국의 연간 미술품 거래 규모는 2007년 6045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하락세를 보이며 2014년 4405억원으로 줄었다가 2013년엔 3249억원으로 추락했다. 2013년은 미술품에 대한 양도세가 도입된 해였다.
미술품 과세제도는 20년이 넘는 논란 끝에 2013년 1월부터 도입됐다. 당시 정부는 미술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면서 과세 대상을 작고한 작가의 6000만원 이상 작품 양도의 경우로 한정하기로 했다. 또 수익은 기타 소득으로 분리 과세해 원가 인정비율(80%)을 제외한 부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세수증대효과는 20억원 안팎으로 미미했으나 심리적 압박 효과는 무시할 수 없었다. 신분 노출을 원치 않는 소장가들은 아예 고가의 작품 구입을 기피하게 됐고 기업들도 '비자금'의 오해를 살 소지를 없애겠다며 미술품 구입을 멈췄다. 이후 미술시장은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미술계는 이 제도의 유예나 폐지를 건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술품 양도차익을 사업소득으로 과세할 계획이라니 속이 터질 지경이다. 현행 세법은 미술품 양도 시 4.4%를 기타소득으로 과세하지만 사업소득으로 분류하면 최대 46.2%의 세율이 적용된다.
미술품을 사는 행위를 두고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개인 소장자들이야말로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참여자인 동시에 후원자들이다. 이들이 발길을 끊으면 미술품 유통의 채널 역할을 하는 경매회사나 화랑의 수입원이 사라지게 됨은 물론 화가 등 작가들의 미술품 판매가 불가능하게 돼 미술시장이 마비되는 결과를 가져 온다.
한국 미술시장은 10년째 4000억원 안팎을 맴돌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 28조원, 중국 14조원, 영국 13조원, 프랑스 4조원 등 선진국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관련 산업은 존폐 기로에 있고 전업 예술가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미술시장 연구자들은 "한국 미술시장은 아직 유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건강한 청년으로 자랄 때까지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정책결정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한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미술품을 사고파는 미술애호가들의 행위를 사업이라고 봐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미술품을 사고 팔아서 떼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사업소득이 되려면 계속적, 반복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 개인소장가가 경매에 고가의 예술품을 여러 차례 위탁매매하는 경우도 판매를 위탁한 것일 뿐 사업을 한 것은 아니므로 사업소득이 될 수 없다는 게 법리적 해석이다.
미술품의 거래는 미술계의 혈액순환과 같은 것이다. 미술품 거래가 활성화되도록 여건을 마련해 줘도 모자라는 상황인데 자라지도 않은 싹을 고사(枯死)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를 내건 정부가 미술에 대한 이해나 소양이 없음을 보여주는 무책임한 탁상행정을 펴는 일은 멈춰야 한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검은 월요일에 줍줍 하세요"…59만전자·400만닉...
함혜리 언론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