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 학살에 눈물로 용서를 구했다. 이게 그 유명한 '브란트의 무릎 꿇기' 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08년 독일 총리로서는 처음 이스라엘 의회를 찾아 유대인 600만명 학살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독일은 과거 만행에 대해 일관되게 용서를 구하고, 내부적으로 나치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그 '일관성' 덕분에 지금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EU)을 이끌고 있는 유럽의 리더가 됐다.
일본이 과거의 만행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덕분에 김대중ㆍ오부치 선언과 같은 한일관계의 미래를 내다보는 선언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틈만 되면 터져 나오는 독도와 신사참배, 위안부를 둘러싼 소위 망언은 일본의 혼네(속마음)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그만하라고? 제발 우리도 그 사과 요구를 그만하고 싶다. 일관성만 보여준다면 모든 것을 과거로 돌리고 함께 미래로 나가고 싶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이 디자인했고, 중국에서 조립했다(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 애플의 아이폰 뒷면에 새겨진 원산지다. 세계의 모든 IT 제품은 글로벌 공급망 안에서 만들어진다.애플은 아이폰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과 소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구해서 중국에서 조립한다. 그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자유무역이고 공정무역이다. 그런 점에서 아베는 '신뢰'라는 말을 쓸 자격이 없다. 백색국가에서 제외한다고? 유엔(UN)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품목이 일본에서 북한으로 여러 번 수출된 사례를 보고하고 있다. 더 따져야 하는가? 신뢰니 제재니 하는 다테마에(겉마음)를 거두고 차라리 한국에 대한 혼네를 드러내는 게 낫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한국으로서는 단기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소재 부품의 국산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공급망이 순조롭게 가동되는 상태에서 반도체에 필요한 3개의 소재들을 국산화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이제 장기적으로 그 비효율도 고려해야만 한다. 국제무역기구(WTO)에의 제소, 국제 사회에의 여론전, 미국의 중재 요구 등 다양한 대응책이 나온다. 심지어는 직접적 계기가 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사 파견과 같은 주문도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급하더라도, 아무리 피해가 크더라도 대응은 원칙 있게 해야 한다. 상대는 '상황에 따라 도덕기준이 쉽게 변하는 기회주의적 윤리를 갖춘(루스베네딕트ㆍ국화와 칼)' 일본이다. 이 문제가 어정쩡하게 봉합되면 '경제보복을 하면 항복하는 한국'이라는 선례가 생겨버린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일본 스스로 '수치'를 느끼고 뺀 주먹을 거둬들이게 하는 것이다. 민간이 주도하는 '사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운동, 그리고 보복을 주도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관저를 제외한 일본의 경제계, 의회와의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우리 일부 언론과 정당의 내부 총질을 그치는 것은 전제조건이다. 왜 구차한 오해를 받으려 하는가?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아베 총리와 일본 우익이 무엇을 원하는지 보인다. '일본은 상황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지위를 모색할 것이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무장 진영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다(루스베네딕트ㆍ국화와 칼).' 지금 왜 일본의 무역보복을 단순한 경제문제로 보지 말아야 할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임진년(1592년), 정유년(1597년), 경술년(1910년). 그리고 기해년(2019년). 잊지 말아야 할 해가 하나 더 생겼다. 다시 정한론(征韓論)의 시대가 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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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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