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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성공한 '정치쇼'의 표본, 여의도 천막당사 8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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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역풍 17대총선 패배 위기에서 꺼낸 천막당사…'대국민 사죄 정치이벤트'에 누그러진 민심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정치, 그날엔…] 성공한 '정치쇼'의 표본, 여의도 천막당사 8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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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찬노숙(風餐露宿)이 이런 모습인가….” 서울 여의도 공터에 덩그러니 놓인 한나라당 천막당사를 바라보던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2004년 3월24일 입주 당일에는 수도시설은커녕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서울 여의도 MBC 앞 중소기업종합전시장이 있던 자리에 한나라당 천막당사가 들어섰다. 국회와 도보로 가능한 거리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러나 원내 제1당의 당사로 쓰기에는 너무 열악했다. 시가 400억원대의 한나라당 중앙당사는 매각을 앞두고 있었다. 한나라당이 급전(急錢)이 필요해서 중앙당사를 팔게 된 것은 아니다.


여의도에 천막과 컨테이너로 중앙당사를 위한 건물 몇 개를 짓는다고 했을 때 ‘정치쇼’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2004년 4월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정치 이벤트라는 얘기다.


한나라당 천막당사 사건을 이해하려면 2004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월12일 한나라당 주도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안이 가결됐다.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국회의원들은 잠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지만 곧이어 성난 민심의 역풍을 경험했다. 민심의 역풍은 17대 총선 심판론으로 이어졌다. 탄핵 주도세력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한나라당은 보수정당 역사상 최대 패배 위기에 직면했다. 한나라당은 호화 당사를 처분하는 것으로 민심을 달래고자 했다. 천막당사 입주 과정에서 대국민 사죄 이벤트를 진행했다. 기존의 한나라당 중앙당사 현판을 떼어낼 때 당 지도부는 사과의 의미를 담아 큰 절을 올렸다.


천막당사 이전을 주도한 인물은 정치인 박근혜다. 그는 한나라당이 천막당사로 이주하기 하루 전 열렸던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뽑혔다. 홍사덕 후보와의 맞대결에서 완승했다. 51.8%의 득표율을 올렸다. 여성 정치인이 야당 대표가 된 것은 1965년 박순천 여사 이후 39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서울 지역에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 내린 지난해 5월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주변으로 시꺼먼 먹구름이 몰려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서울 지역에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 내린 지난해 5월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주변으로 시꺼먼 먹구름이 몰려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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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현재 총선을 앞두고 승리는커녕 생존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화가 나서 한나라당을 외면하고 있는 국민의 관심을 돌려놓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표는 대표 선출 다음날 국립현충원을 다녀온 이후 여의도 천막당사에서 첫 상임운영위원회를 열었다. 한나라당 천막당사와 관련해 정치권 쪽에서는 ‘쇼’라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민심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역사상 최대의 패배를 눈앞에 둔 한나라당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정서가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 번져 나갔다. 한나라당 천막당사는 전통적 지지층에게 표를 줘야 할 명분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으며 원내 제1당에 올랐지만 한나라당도 121석의 선전을 기록했다. 한나라당은 서울 48개 의석 중 16석을 차지했고 부산에서는 18개 의석 중 17개 의석을 석권했다. 처참한 지지율이 이어졌던 당시 여론조사를 고려한다면 한나라당은 분명 선전했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서울 49개 의석 중 12개 의석, 부산 18개 의석 중 12개 의석을 얻었다. 17대 총선의 한나라당 성적표가 20대 총선의 새누리당보다 더 좋은 셈이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 및 당직자들이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 및 당직자들이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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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천막당사 생활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4월15일 17대 총선이 끝난 이후 두 달여 만인 6월16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당사로 이전했다. 17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직후다. 84일간의 풍찬노숙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여의도 천막당사는 성공한 정치쇼로 기록됐다. 한나라당은 여의도 천막당사 시절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천막당사의 성공 모델 때문일까. 주요 정당은 반전의 계기가 필요할 때마다 제2의 천막당사를 선택지로 고민한다. 정당의 결기를 보여줄 유용한 카드라는 의미다.


최근에고 자유한국당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가결 상황에 대한 항의 표시로 광화문 천막당사를 준비할 것이란 관측이 여의도 정가에 퍼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불허 방침’을 밝히면서 정치 쟁점으로 떠오를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국당이 광화문 천막당사 카드를 접으면서 논란은 정리됐다.


만약 광화문 천막당사 설치를 실행에 옮겼다면 2004년 한나라당을 구원해준 것과 같은 정치적인 효과로 이어졌을까. 광화문에 한국당 천막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서울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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