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청론] 서울 아파트 층수규제, 쾌적한 주거환경 유지위해 필요
건축물의 높이(층수) 규제는 도시의 전반적인 경관 관리나 특정 자연ㆍ역사 경관 보호 및 항공기 안전 등 특수한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 특히 주거지역에서는 주변 토지 및 가로의 일조와 조망을 보호하면서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35층 층수 규제 논란은 제3종 일반주거지역 중에서도 아파트 단지에 집중된다. 일반적인 단일 필지의 경우 서울시에서 허용되는 최대 용적률이 250%로, 1000㎡의 대지라면 건폐율을 20%로 설계해도 13층 정도에서 건축물의 층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지면적이 큰 아파트 단지의 경우는 건폐율에 따라 높이가 100층을 넘는 건축물이 지어질 수도 있다. 여기가 논란의 시작점이다. 어차피 해당 용도지역에서 허용하는 건폐율과 용적률이 결정돼 있으니 높이는 자유롭게 해줘야 다양한 스카이라인이 구성될 수 있어 도시 미관에도 긍정적이며 더 나아가 도시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는, 35층 층수 규제에 대한 반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높이가 자유롭게 구성돼야 도시 경관적 측면에서 더 낫다는 의견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자유로운 스카이라인으로 구성되는 고층 건축물군이 한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시 전역에 자유로운 스카이라인을 허용하는 도시는 단언컨대 없다. 파리나 런던 등 오래된 도시를 방문할 때 느끼는 도시의 아름다움은 같은 층으로 지어진 유사한 건축물들이 모여서 이뤄내는 집합 경관으로부터 나온다. 누구도 이와 같은 도시 경관을 획일적이라 비판하지 않는다. 즉 좋은 도시 경관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질서가 필요하다. 1970~1980년대에 동일한 평면으로 모든 아파트 단지가 '똑같이' 지어진 사례는 거론할 필요가 없다. 최근에 지어지는 아파트 단지들은 이미 다양한 평면과 개성 있는 입면 디자인 등으로 설계돼 더 이상 획일적이지 않다. 여기에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서로 경쟁하듯 들쭉날쭉한 높이의 아파트 단지들이 모여 있는 도시 경관이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아파트 단지가 랜드마크가 될 필요는 없다. 높다고 랜드마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도시 경관은 자연 경관과 주변 건축물들 간의 조화에서 시작된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높이의 건축물들은 다양한 스카이라인 조성이라는 선의를 넘어 무분별한 고층 건물 난립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35층 층수 제한이 모든 아파트 주동들을 35층으로만 지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35층은 최대 층수일 뿐이다. 35층 이내에서 5층, 15층, 20층 등 다양한 층수로 변화 있는 스카이라인을 얼마든지 구성할 수 있다.
주거 환경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고민해봐야 한다. 1970년대에 일반적으로 5층 규모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은 1980년대 15층, 1990년대 25층, 그리고 최근에는 35층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지상부에서 바라볼 때 35층도 결코 낮은 높이는 아니다. 35층을 넘는 고층 건축물들의 밀집은 해당 단지 내부뿐 아니라 인근 지역과 가로에서 하늘을 가로막는다. 자연 경관뿐 아니라 하늘 조망마저도 고층에 거주하는 사람들만의 향유물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인근 주거지역 환경의 쾌적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미래 세대에게도 문제다. 많은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건축물들이 35층 이상으로 경쟁하듯 높아만 진다면 당장 20~30년 후에 우리 도시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물론 자유롭게 솟아오른 다양한 높이의 초고층 건축물이 필요한 지역도 있다. 중심상업지역이나 일반상업지역에는 123층 롯데타워처럼 대지 조건만 만족한다면 얼마든지 초고층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다. 용산이나 여의도ㆍ영동대로 주변 등 서울의 도심 및 광역 중심 기능을 수행하고 있거나 수행하도록 계획된 지역에서도 높이는 큰 고려 요소가 아니다. 이런 곳에서는 주거용 건축물도 주상복합건물 형태로 50층 이상 개발이 가능하다. 높이 규제가 필요한 지역이 있고 필요 없는 지역이 있는 것이다. 이런 판단은 해당 지역의 맥락과 도시 공간 구조상 위계나 역할에 따라 계획적으로 정해진다. 층수 규제를 반대하는 측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사례인 미국 뉴욕시 맨해튼 역시 각종 초고층 건축물이 자리 잡은 지역은 도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뉴욕시의 용도지역제(Zoning)를 통해 고밀 상업지역 또는 고밀 주거지역으로 지정된 곳에 한정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용도지역제에는 고밀 주거지역이 없다. 주거지역 중에서 가장 높은 용적률이 허용되는 서울시의 준주거지역에서도 용적률 400%가 최대 한도다. 따라서 건폐율과 용적률만으로는 해당 지역의 맥락과 특성에 맞는 개발을 유도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높이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다만 현재의 층수 규제는 종합적인 높이 규제로 더 정교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층수 기준보다는 미터 기준이 바람직할 수도 있고, 제3종 일반주거지역이라 할지라도 입지 특성을 고려해 더욱 세분화된 높이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도시계획적 결정들은 지방자치단체장의 계획고권에 해당한다. 헌법과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 각종 법률에 따라 지자체장은 도시기본계획과 도시관리계획 등을 수립해 토지를 계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계획 권한과 승인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이를 위한 계획 재량도 폭넓게 인정된다. 대법원 역시 판례를 통해 특별히 불합리하거나 침해되는 사익이 공익에 비해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한 광범위하게 지자체장의 계획 재량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도시기본계획을 바탕으로 한 35층 층수 규제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높이 규제도 건축물의 밀도를 적절하게 제어하기 위한 계획 재량 범위 내의 정당한 도시계획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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