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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삼성전자가 스타트업이 될 순 없다

최종수정 2016.04.22 11:01 기사입력 2016.04.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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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베트남전은 미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미합중국 수립 이래 미군의 첫 해외 전쟁 패배가 베트남전이다. 1차 대전, 2차 대전은 물론 한국 전쟁에서 미군은 상상을 초월하는 물량과 작전 능력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한국전쟁 당시 '더 이상 파괴할 목표물이 없다'고 조종사가 보고했을 정도로 평양을 공습한 것이나 2차 대전 당시 도시의 절반을 폐허로 만든 도쿄 대공습은 미군의 가공할 만한 전쟁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군의 높은 자긍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베트남전이다. 동서냉전이 절정에 달하던 1960년대 후반, 미군은 최대의 전비를 쏟아 부어 전쟁을 수행했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미국은 111억 달러(현재 가치로 약 700억 달러, 한화 약 80조 원)를 전비로 사용했으며, 55만 명의 미군을 전투에 투입했다. 나중에 수세 몰리자 미군은 비인도적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정글을 고사시키는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나 민간인 마을을 초토화시켰던 네이팜탄 같은 대량 살상무기까지 사용했으나 결국 참패하고 말았다.

미군의 패배는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정규군이 지리멸렬한 비정규군 게릴라에 패한 사례이다. 어느 나라 군대와 마찬가지로 미군은 소대에서 중대, 대대와 같은 위계구조와 상명하달식 명령 계통을 가진 조직이었다. 미군은 현대의 대기업과 같이 일사불란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베트민'은 소규모 전투조직이 독립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는, 유연한 조직 형태였다. 미군이 적을 공격하려면 반드시 최상급부대 지휘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반면, 베트민은 현장의 부대 각각의 판단에 의해 공격이 결정되었다. 결국 2차 대전에서 그토록 위력을 발휘했던 미군의 전투력은 정글 속 게릴라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 상황을 경영학적 용어로 정리하면 미군이라는 '기계적 조직'은 베트민이라는 '유기적 조직'에 패한 것이다.

지난달 24일 삼성전자는 '스타트업(Start Up) 삼성 컬처 혁신 선포식'을 했다. 이 구상은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과 업무생산성 제고, 자발적 몰입강화를 기초로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의 전 임원은 권위주의 문화 타파를 선언하고 선언문에 사인도 했다. 휴일 근무, 평일 야근을 대폭 줄이며 연간 최소 15일 이상 휴가를 쓰도록 의무화한다는 가이드라인도 있다. 이런 삼성전자의 노력은 베트민에 패한 미군의 위기의식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미군이 베트민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간과한 점이 있다. 조직을 변화시키려면 반도체나 핸드폰 같은 기술집약적이고 장치집약적인 제품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의 핵심역량은 통합형 제품을 위한 일사불란한 조직적 통합력이다. 반도체 조립라인에서 개인 개인이 마음대로 제조장비에 손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다르다. 그들은 소프트웨어 제품을 다루기 때문에 개발자 개인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고 심지어 한 순간에 한 두 명의 개발자에 의해 자사를 파괴하는 제품이 출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스타트업 같은 조직문화로 가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하드웨어를 버리고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즉 제품특성과 조직특성은 일치해야 한다.

물론 하드웨어 기업이라고 해서 혁신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미국 기업이 선택하는 방식은 M&A나 사내 벤처의 설립이다. 조직의 핵심역량을 유지한 상태에서 새로운 문화와 피를 수혈하는 방식이다. 더구나 권위적 조직문화를 타파하고 수평적 조직 문화를 추구하겠다면서 무슨 '선포식'을 하고 임원에게 서명하게 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은 선포식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저 유명한 도요타의 '저스트인 타임' 시스템은 거의 반세기의 노력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종업원은 삼성전자가 그토록 추구하는 실리콘밸리형 스피릿을 갖게 되었다. 조직의 DNA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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