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금융은 정말로 보신주의에 빠진 것일까. 지난 22일 부산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만 안 나면 된다는 보신주의를 극복하고 창조적 기술금융을 통해 금융기관과 기업이 함께 혁신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 금융산업의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지적이라는 반대의견 역시 만만치 않다. 이에 본지는 3회에 걸쳐 '금융보신주의, 그 진실은' 이라는 기획 시리즈를 통해 여론재판식 비난을 냉철히 분석해보는 한편 한국 금융산업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출처:중소기업중앙회)

(출처:중소기업중앙회)

AD
원본보기 아이콘

리스크 높은 기업은 직접금융으로 조달토록 해야
유럽식 유니버셜뱅킹 도입해 은행의 IB기능 강화도 해법
기술금융 확대하려면 수수료 합리화도 동반돼야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이현주 기자] "정부가 투자은행(IB)를 제때 활성화시키지 못해놓고, 상업은행(CB)에게 IB가 해야할일까지 하라고 부추기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업(業) 구분부터 먼저 지어야 한다."(시중은행 부행장)

정부가 기술금융 투자확대책을 내놓은 직후 공정거래위원회의 금리담합조사까지 이뤄지자 금융전문가들의 반응이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기술금융을 일으켜 성장기업에 혈액(자금)을 대 줘야한다는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각론에 있어 비난의 화살이 간접금융 시장에만 와 있다는 공통된 지적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용등급이 아슬아슬해 은행 대출이 어렵거나, 성장잠재력은 높은데 리스크가 과도해 금융 보신주의의 빌미가 되는 기업은 주식발행과 회사채 같은 '직접금융'을 통해 자본을 조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투자은행이 자본시장에서 해야 할 일을 상업은행이 맡는 자금시장에 떠넘겨서는 안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은행자금과 정책자금을 통한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 비중은 평균 93.7%에 달했다고 밝혔다. 반면 주식과 회사채 등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1.5%에 불과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은행대출에 크게 의존해 온 셈이다.


이처럼 낮은 직접금융 의존도는 글로벌 스탠다드와도 어긋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직접금융 비율은 2012년 기준 201%이다. 미국(332%), 일본(305%), 프랑스(252%)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리스크는 크지만 아이디어와 신기술력이 뛰어난 기술혁신기업은 그 특성상 직접금융시장을 통해 엔젤투자, 크라우드펀딩, 벤처투자 등을 통해 투자금융을 공급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분석했다.


시중은행 한 고위관계자도 "기업이 부실이 많이 생기면 자본금이 부족해지고 그에 따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도 맞추기 어려워진다"며 "결국 사업성 검토를 잘해야 하는데 이를 특수은행이 아닌 민간 상업금융에까지 취급하도록 조치하는 것은 무리수"라고 말했다.


(출처:한국은행)

(출처:한국은행)

원본보기 아이콘

상업은행에게 리스크가 큰 모험대출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것은 선진국 정책과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은 1960년대 글래스 스티걸법에 따라 투자은행(IB)과 상업은행(CB)을 엄격히 분리, 상업은행은 고객 예금으로 주식투자를 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1999년 폐지되긴 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도드 프랭크법, 볼커롤 등 정책이 부활되면서 은행의 모험자본 투자는 법적규제를 받고 있는 추세다.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우리나라에서 IB라고 할 것이 사실상 산업은행 밖에 없다"면서 "투자은행이 제역할을 못하는 모험자본공급 역할을 상업은행에 강요해선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상업은행에게 투자은행 역할을 부여한다면 아예 유럽식 유니버셜뱅킹을 도입해 은행의 IB기능을 강화하도록 하는게 맞다"고 밝혔다.


기술보증기금과 관련해서는 정부의 간섭이 되레 업계를 어렵게 한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A은행 부행장은 "금융위에서는 기술평가기관(TCB)성과기금으로 건당 100만원씩 주고 평가서를 활용하라고 하는데 대출을 할지 말지 정하는데 비용이 100만원이나 든다면 어느 은행에서 좋아하겠느냐"며 반문했다. 그러면서 "시일이 좀 걸리더라도 은행 자체적으로 여신 심사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AD

다만 은행들이 수익 다변화에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한국은행(BOK) 이슈리뷰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은행의 비이자수익 비중은 21.3%로 미국 상업은행의 비이자수익(34%)에 10%포인트 넘게 미달된다. 이는 국내 은행들이 외환위기 이후 인수합병으로 자산규모는 커졌으나 수익창출 역량은 상대적으로 낮아진 점을 보여준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기술금융 확대로 여신정책이 달라진다면 그 기간 은행의 안정적 수익이 유지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은행이 비이자부문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수수료 합리화 등 제반 규제가 완화돼 비이자수익을 늘려가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