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공공예술프로젝트 28일 개막…사업 10년, 전환점 모색도
우리나라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공공미술에 대한 사회적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 차원에서 이를 처음으로 프로젝트화한 것이 경기도의 중소도시 안양이었다. 안양은 지난 2005년 쇠락하는 유원지를 되살리는 데 공공예술 개념을 도입했다. 그리고 안양을 벤치마킹해 서울 도시게릴라프로젝트, 광주 비엔날레의 '폴리 프로젝트' 를 비롯해 다른 도시들이 잇따라 지역의 예술축제와 문화사업에 공공예술을 도입했다.
공공미술의 첫 장을 열었던 안양은 이 분야의 선구자인 만큼 공공미술의 새로운 시도들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올해 공공미술 10년차를 맞은 이곳에서 이달 28일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가 개막된다.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이 프로젝트의 올해 행사는 국내에서 전개돼 온 공공예술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전환점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공공미술이 적잖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보이고 있는 문제들, 즉 조형물 설치의 난립, 관리부실, 미흡한 주민참여 등의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해결책을 마련해 보겠다는 취지다.
지난 7일 찾아간 안양시 만안구 일대 삼성산과 안양천 일대에는 네덜란드 건축가팀이 만든 안양전망대 등 50여개의 공공예술품들이 자리해 있다. 이 중 절반 가량은 기존 작품들이 새단장해선보이는 것이며, 24점은 국내외 작가들이 새로 만든 작품이다. 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예술공원 입구에 세워진 배영환 작가의 '사라져가는 문자들의 정원'이란 작품이다. 수메르ㆍ아즈텍ㆍ한자ㆍ히브리ㆍ이집트ㆍ마야 등 지금은 잊혀진 고대문명의 문자들과 점자 수화, 옛 한글을 새긴 조각품이다. 이 작품이 자리한 곳은 제약회사 유유산업의 옛 공장부지의 일부다. 건물 일부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8개의 기둥, 현대 문명의 한 '유해'에 옛 문자의 유해가 새겨졌다. 이 조각품 아래는 거북 귀(龜)자를 형상화한 조경이 꾸며져 있다. 신라시대부터 비석을 세우기 위해 받침대로 놓았던 '귀부'를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자의 기원이 된 갑골문자의 은유 같기도 하다. 배 작가는 "어떤 문자가 나오기까지는 많은 문화적 축적이 이뤄진다. 침략과 통합으로 사라져간 전통과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혜화 안양문화예술재단 팀장은 "사업부지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갖는 세 가지 역사적 흔적들이 안양시의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재단은 조형물을 뛰어넘어 공공미술을 안내하는 전문해설사 양성 프로그램 및 교재 개발과 공공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사업들을 벌여갈 계획이다. 이 같은 아카이브 결과물은 이번 APAP를 통해 마련된 국내최초 공공예술전문 서가인 '공원도서관'에 보관된다. 또한 이런 정보와 기록들은 앞으로 공공에서 널리 활용될 수 있는 자료로 배포될 예정이다.
공공미술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지만 적잖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조형물 설치 위주로 한 작품들의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배 작가는 "대중과 미술이 호흡한다는 공공미술을 총론에서 지속적으로 지지해 주길 바란다"며 "각론에서는 우리 상황에서 처한 여러 문제들을 다양한 방향으로 논의해보면서 점차 더 나은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첫 회부터 지금까지 APAP를 꾸려온 심 팀장은 "지금까지 공공미술은 공적인 문화자원으로 작품의 보급에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주민이 주체가 돼 만들어가는 문화자산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한계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공미술이 시민들의 문화ㆍ예술 향유권을 넓혀준 것에 대해서는 평가할 대목이다. 안양문화예술재단 통계에 따르면 안양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공공예술에 대한 인지도는 2008년 40% 미만에서 지난해 70% 이상으로 늘었고, 만족도는 80% 이상, 공공예술사업이 지속되길 바란다고 응답한 이는 70%인 것으로 나타났다. 만안구에 거주하는 주부 왕 모(여ㆍ40대)씨는 "10년동안 예술품들을 가까운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이 지역주민으로 크게 만족스러운 일"이라며 "적은 예산으로도 문화를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4회째 맞고 있는 APAP는 회마다 예산이 줄어들곤 있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공공미술의 기조를 잃지 않고 지속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고, 10년, 20년 후에는 주민과 지역의 이야기가 끈끈하게 결합되는 내실을 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심 팀장)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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