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감히 나는 내가 흑조(黑潮)임을 선언하노라/내가 물 골짝 개울이 아니고/허허벌판 난바다를 휩쓸어/나의 길 한 마당을 이룬 흑조임을 선언하노라/감히 나는 달의 맹방임을/새삼스러이 선언하노라"(무제시편 3 일부)


최근 묵직한 시집을 들고 독자 앞에 나타난 고은(사진)은 "55년 동안 시적 자취를 허용한 모국어와 조국, 조국 밖에 숱한 언어, 문인들에게 감사한다"며 비장한 헌사를 바쳤다.

'무제시편'은 607편, 1016쪽으로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이번 시들은 지난 봄부터 여름까지 두 계절동안 쓰여졌다고 하기에는 질과 양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창작열을 보여준다. 고은은 "제목 안에 시의 내용을 흡수시켜 버리는 오랜 관습을 버리고, 각 시편들에게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무제시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며 "시가 명제 혹은 고유명사에 속한 진술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지금은 시가 무력한 시대다. 그 무력함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 시는 5000여년 이상 장대한 역사 동안 흥성했다. 이제 지구상에서 나는 시의 형제들과 시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더불어 남은 시간동안 시를 기억하게 하는 일들을 벌여 나갈 작정이다. 시의 죽음 ! 시를 더이상 읽지 않는 세상에서 무력함이야말로 나의 운명이다."

불가의 구도자에서 민주투사, 시인으로 살아온 그의 만행은 올 봄 유럽, 아프리카,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올 여름녘 수원 광교산 자락에 이르렀다. 광교는 지난 30여년간 "어제 그제 그대로/그냥 시인"으로 "날마다 절정"이었던 안성시대를 접고 "또 하나의 해설픈 시작을 위하여"(안성이여 안녕) 잡은 터전이다.


"내년 베를린시에서 체류하며 창작하라고 좋은 조건을 제시해왔다. 또한 파리 일부 대학에서 강의 맡아달라는 요청도 있다. 라틴아메리카도 초청이 있어 가봐야 한다. 베를린과 시카고 문학축제에도 초청이 이뤄졌다. 지금 새로 거주한 터전과 창작에 집중해야할 지 고민이다. 다만 아주 호흡이 긴 시를 준비 중이다."


고은문학의 오랜 시어들이 '배', '새', '바다'로 가득차 있 듯 "내 문학이 시작된 처음부터 지금까지 낯선 꿈과 집이라는 두개의 모순이 이룬 로드무비"라고 설명한다. 마치 고은 문학이 모국어를 넘어 새로운 언어와 민족들을 만나려는 고은의 발길은 광교산에서 잠시 머무른 것에 불과하다.


무제시편에서는 "이놈의 결과주의/이놈의 근본주의/이본의 실용주의..."(무제시편 390)을 버리고 "세상 최악인 것인 이데올로기"((무제시편 105)를 배격하는 등 사유의 깊이가 이전과는 판이하다. 이미 변화는 예견된 일이다. 일찌기 고은이 '바람의 사상'에서 "시의 깊은 골짜기에 남겨진 모든 둔사들을 불태워 버리고", "은유의 나약함에 길들여지지 말고 직설로 돌아가라"고 설파한데서 잘 나타난다. 대신 젊은 시절, 고은 시가 지닌 은유와 묘사 대신 관념, 상징은 더욱 뚜렷해졌다. 70년대 "연기 한번 고구려 고구려 힘차게 솟아오른다"(연기 한 가닥)거나 "다음 날 비가 왔습니다. 비 오자 나뭇잎 컹컹 짖으며 푸르렀습니다"(죽은 개)에서 보여준 시적 유희는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국경과 언어를 넘는 고은 문학은 1958년 '현대문학'지에 '폐결핵'(조치훈 추천)을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고은의 본명은 고은태(高銀泰, 1933년 8월1일~)다. 소설을 쓴 적도 있으나 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고은은 학창시설 나환자 출신의 시인 한하운 '황톳길'을 보고 전율, 시를 쓰게 됐다고 여러번 술회한 적 있다.


1952년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 승려가 돼 10년간 참선과 방랑 등 만행을 펼치며 시를 썼다.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을 내고 1962년 환속,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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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펴낸 '문의마을에 가서'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 대한 비판을 담아 허무와 절망 등 탐미적인 세계를 다룬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이후 '자유실천 문인협의회' 대표로 활동하며 민주화 투사로 거듭나기도 했다.


지난 2005년 11월, 스웨덴의 유력 종합일간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뎃(Svenska Dagbladet)'은 시집 '만인보와 그외 시들'에 대해 '신화 같은 서사시에서 떠오른 시선집'이라고 평했다. 더불어 "만일 스웨덴 한림원이 시 부문을 배척하지 않았다면 한국시인 고은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이 적격이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다른 언론들은 '군산의 제왕', '한국의 드라마틱한 현대사 그 자체'로 고은을 칭하는 등 온갖 찬사를 보였다. 그해 고은은 오르한 파묵(터키), 토마스 트란스트뢰뫼르(스웨덴)와도 만나 교우를 나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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