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저자]권혁웅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권혁웅 시인(사진)의 다섯번째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창비시선)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말했듯이 "마음 아파서 세상에 간섭하려는" 마음들로 차 있다. 그래서 일상과 가꾸운 이웃들의 소소한 삶이 디채로운 풍경으로 그려진다. 그는 이번 시집에 대해 "큰 목소리가 주는 공허함보다는 주변사람들의 일상에서 삶을 공감하고 싶어 정색하지 않으려 애썼다"고 토로한다. 또한 "세속이 그 지극한 경지 안에서 스스로를 들어 올렸으면 했다"고 말한다.그가 말하는 세속성은 "사는 것 ! 예컨데 지지고, 볶고, 아등바등하는 삶속에 담긴 사랑, 갈등, 행·불행 등등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이다. 2000년대 중반 '미래파' 논쟁을 주도하며 시단의 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하기도 했던 권 시인은 평론가이기도 하다. 평론이라는 장르를 넘나드는 이유를 "그저 동료시인들의 작업을 함께 읽고 감상하는 수준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며 시의 질서 혹은 조감도를 그려내기 위해 필요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일까 ? 그의 시들은 다채로운 이웃의 삶을 명료하고 건조한 듯 조망하면서도 풍부한 감성을 부여한다. 특히나 세밀한 디테일은 이전 시들보다 돋보여 일상의 풍경이 그 이면조차 수채화처럼 투명하다.
"지금 애인의 울음은 변비 비슷해서 두시간째/끊겼다 이어졌다 한다/몸 안을 지나는 긴 울음통이 토막 나 있다/신의주 찹쌀순대 2층, 순댓국을 앞에 두고/애인의 눈물은 간을 맞추고 있다.(···)"('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일부)
시인이 "세속의 자식인 시"라는 수단을 통해 일상성을 얘기하는 것은 세상과의 소통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이 포착한 일상성은 소통과 통합이다. 직장을 잃고서 거짓으로 "야근과 당직을 마치고 퇴근하는" 가장(24시 양평해장국), "늙으면 죽어야지"하면서 "로맨스가 그치지 않는"노인대학의 노인들(불멸), 췌장암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간 사내(요단강 이야기) 등등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나즈막하게 들려준다.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저 캄캄함 혹은 편안함(···)/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현세로 돌아갈 페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봄밤이 거느린 슬하,/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이불처럼/부의봉투처럼"('봄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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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시집에서 눈여겨볼만한 대목은 말을 부리는 솜씨다. 가히 유희 수준이다. 능란한 시 작법은 "음치가 음악치료가 되는 기적"(주부노래교실), "삼년째 돈을 붓는 아마곗돈 회원들"(불가마에서 두시간), "시금치는 시큼해지고 맛살은 맛이 살짝 갔지"(김밥천국에서), "그녀가 어두육미가 아니고/내가 용두사미가 아니고"(우동을 먹으며), "얼토와 당토야말로 귀신의 영토"(서해에서) 처럼 헤아릴 수 없이 쏟아진다. 말을 다루는 재치와 풍자는 잠시 현실을 고단함을 내려놓게 하는 각성제로 보여질 지경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는 현실의 비애조차 그다지 큰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시인은 이같은 현실 인식에 대해 "지금은 거대담론이 사라진 상황에서 문학의 위기만을 논할 수 없다"며 "2000년대 중반 이후 다채로운 실험과 이야기를 풀어놓는 소장 시인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시가 미래파적이지는 않으나 시를 통한 사회적 소통 방법의 변화는 여전히 시인들이 주목해야한다고 설파한다. 권 시인이 다섯번째 시집에서 힘을 빼고, 작심하듯 싸지르지 않은 까닭에 우리들의 삶이 "세속이 스스로를 들어올리는 지극한 경지"를 맛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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