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경영 '타이밍정치' 모처럼 빛났다
귀태발언 문제제기 2박3일만에 발빠른 여야조율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정치는 역시 타이밍의 예술이다. 홍익표 민주당 전 원내 대변인의 첫 발언 이후 2박3일간 정국을 뒤흔들었던 귀태(鬼胎)파문은 여야가 국회 정상화에 합의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여야가 나름의 정치력을 발휘한 결과다. 막말이 막말을 낳고, 그것이 또 파장을 키우는 과거의 국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물론 여기엔 귀태 파문을 바라보는 여야의 셈법이 달랐던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치는 타이밍'이라는 사실과 '오버(over)를 했을 때는 역풍이 불어온다'는 교훈을 재확인시켜줬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 11일 오전 10시 20분 홍 원내대변인은 현안 브리핑 중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란 책 내용을 인용하며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 이라는 뜻의 귀태라는 표현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사용했다. 홍 대변인은 극우정치인으로 한국 내에서 비판 여론이 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이 유사한 행보를 걷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원내대변인의 당시 브리핑 내용은 돌발발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날 오후 2시에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원내대표가 회담이 예정됐기 때문이다. 2007년 남북 정상회의 대화록 및 자료 열람, 국정조사에 불참한 홍준표 경남지사의 고발, 답보 상태에 빠진 국정원 국정조사 등 현안 등이 산적한 상황에서 원내대표 협상에서 성과가 없을 경우 민주당으로서는 큰 부담을 안게 될 상황이었다.
홍 원내대변인의 발언은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햇다. 여당의 공식적인 대응은 발언이 나온지 6시간만이 오후 4시20분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의 입을 통해 나왔다. 김태흠 대변인은 "홍 원내대변인의 막말과 박 대통령에 대한 도가 넘는 비하 발언은 대한민국과 전체 국민을 모욕한 것"이라며 "당장 국민과 대통령께 사과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도 여당은 해당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을 뿐 책임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11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에서 당장 "금도를 넘어선 민주당 의원의 막말에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이는 대통령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며 강력반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귀태발언에 역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홍 대변인은 오후 7시에 "자신의 발언이 확대 해석돼 대통령에 대한 인식공격으로 비춰졌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12일 오전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한층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정치권의 평범한 막말 중 하나로 볼 수 없는 수준이며, 대선불복종 연장선의 완성"이라며 "우리 국회의원이 대통령에게 그런 막말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망치고 국민을 모독하는 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타이밍의 정치 = 이후 새누리당은 전일 원내대표간의 합의사항을 모두 취소하고 홍 원내대변인의 대변인 사퇴와 민주당의 당차원의 사과를 요구하며 정치일정 올스톱을 선언했다. 이 때문에 12일 예정됐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및 관련자료에 대한 열람을 위한 예비열람 및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일정도 중단됐다.
새누리당의 초강경 대응에도 불구하고 귀태파문의 수습은 빨랐다. 여야 지도부가 정치력을 발휘해 신속하게 대응한 덕분이다. 민주당은 12일 밤 홍 원내대변인은 "부적절한 발언에 사과한다"며 원내대변인직에서 물러났고 김관영 수석 부대변인은 민주당 김한길 당대표 명의로 사과의 뜻을 나타냈다. 13일 양당 원내대표들이 만나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고 국회일정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귀태 발언 이틀만이다.
양당이 정치일정을 재개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13일로 기한이 만료되는 공공의료 국조 특위는 공공의료 정책 관련 요구 사항 등을 담은 결과보고서를 채택하는 한편으로 홍 지사를 국회 불출석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15일에는 당초 12일로 예정됐던 대화록 관련 일정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수습과정에서의 타이밍은 여야 모두 적절했다. 민주당의 사과나 원내 대변인 사퇴가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또는 새누리당이 이 문제를 질질 끌면서 국면 전환용으로 사용했더라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야는 모처럼 같이 웃었다. 성숙한 정치력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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