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동 별곡'..시장 상인들의 아주 특별한 사연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회색빛 재래시장 천장에 걸린 종이들이 꼭 예전 시골학교 운동회날 학교 마당을 수놓았던 만국기처럼 시장 골목을 화사하게 꾸몄다.종이에는 '호남수산', '부산어묵', '할매 과일', '서울 해물'집 등등 평소 어깨를 맞대고 올망졸망 장사를 하는 이웃들의 상호가 담겼다. 상인들도 바쁜 일손을 놀리다가도 자꾸만 천장에 매달린 종이를 쳐다보느라 고개가 아플 지경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상인들 모두 시인으로 등단한 양 서로 축하하고, 얘기를 나누느라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다.
천장의 종이에는 갖가지 사연과 이야기 혹은 시 형태의 에세이가 적혀 있다. 살면서 소중했던 추억을 담아놓은 글들이다.
시장은 ‘말’과 ‘이야기’가 흐른다. 또한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 상인들은 말을 통해 손님을 모으고 물건을 설명하고, 값을 흥정한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덤이다.
대형마트에 밀려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이 죽고, 불황에 힘겹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신의 사연들로 소통에 나선 상인들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시장에서 수십년동안 함께 장사하며 삶을 나눠온 할머니들의 얘기속에는 애써 꾸미지 않아도 진심이 뚝뚝 묻어난다.
23일 신당 중앙시장을 찾은 시민들도 즐거운 표정이다. 점심시간을 이용, 동료들과 좌판에서 칼국수를 먹기 위해 시장을 찾은 한 직장인은 “눈에 확 띠는 작품들이 설치된 모습이 참 장관이다. 자꾸 천장을 올려다보게 된다. 꼭 설치 미술품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말만 잘하면 물건 값을 깎아주기도 하고, 애교를 부리면 하나 더 주기도 하는 맛에 전통시장을 자주 찾는다"고 덧붙였다.
“시장에 문화예술이 흐르면, 사람도 흐르지 않을까요 ?” 신당 중앙시장 '황학동별곡_100인 이야기'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집필가 임주영씨의 말이다. 임씨는 신당 중앙시장 상인의 아들이기도 하다.
'황학동별곡_100인 이야기' 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3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을 계기로 이뤄졌다. 문화예술은 콘서트홀, 미술관 등 특별한 공간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시장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도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자는 취지다.
시장은 상행위는 물론 수많은 삶과 애환, 사연들이 모이고 흩어지는것을 착안해 상인들이 자신의 얘기를 문화예술 작품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임주영씨가 직접 시장상인 100명과의 인터뷰를 진행해 상인들의 성격, 외모, 그 밖의 특징을 수집해 100개의 에세이 등으로 제작하는 등 ‘이야기 채집-캘리그라피 작업-전시’의 총 3단계의 작업으로 이뤄졌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소득은 상인 자신들의 말과 이야기가 훌륭한 문화예술 소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점이다. 현재 신당시장 상인들은 온누리상품권 보급, 시설 현대화, 공동구매 추진 등으로 전통시장 살리기 등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에 문화예술을 매개로 소비자들과 소통에 나선 것도 시장 살리기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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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상인들과 협업하며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에도 일조했던 캘리그라퍼 디자이너들도 높은 만족감을 보였다. 이번 작업에 참여한 캘리그라퍼 오민준 작가는 “상인들과 소통하면서 전통시장만의 정과 개성을 발견하게 됐다. 캘리그라피 설치물이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문화예술과 시장,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은 시장을 더욱 풍성한 삶터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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