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신태용 감독 "정상에서 아름답게 물러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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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신태용 성남일화 감독에게 '실패'라는 수식어는 낯설다. 프로 선수로 데뷔한 1992년 신인왕을 차지하며 스타덤에 오른 그는 13시즌 동안 성남(천안일화 포함)에서만 뛰며 숱한 업적을 남겼다. K리그 6회 우승(1993년, 1994년, 1995년, 2001년, 2002년, 2003년)과 두 번의 MVP(1996, 2001년), 득점왕(1996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동국(전북)이 최근 경신한 K리그 최다 공격 포인트(167개)의 종전 주인 역시 그였다.


승승장구는 지도자 데뷔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스타플레이어는 감독으로 성공하기 힘들다'라는 세간의 편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2009년 감독대행으로 성남 지휘봉을 물려받은 신 감독은 곧바로 K리그와 FA컵 준우승을 일궈냈다. 이듬해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정상에 오르며 아시아 최초로 선수와 감독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진기록을 작성했다. 지난해 FA컵을 거머쥐며 명성을 재확인한 그는 "내년 시즌 ACL 우승에 재도전하고 싶다.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신태용 감독의 바람은 이내 현실이 됐다. 동계훈련을 앞두고 일찌감치 3년 재계약에 성공한 그는 겨울 이적 시장에서 한상운, 윤빛가람, 황재원, 김성준 등 포지션별 선수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세르비아 출신 외국인 공격수 요반치치는 신 감독이 구상하는 공격 축구의 화룡점정. 탄력을 받은 성남은 1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안챌린지컵에서 광저우 부리(중국), 시미즈 S펄스(일본)를 각각 5-1로 대파하며 우승컵을 차지했다. 막강 화력쇼에 '신공(신나게 공격)'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올 시즌 K리그와 ACL, FA컵 우승에 도전하겠다"라는 신태용 감독의 야심찬 출사표는 성남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였을까. 성남은 올 시즌 ACL과 FA컵에서 연거푸 쓴잔을 마셨다. 마지막 남은 K리그에서도 반등은 불발됐다. 10승7무13패로 11위. 강등 경쟁을 펼쳐야 하는 하위 스플릿으로 밀렸다. 지난 12일 미디어 데이 행사에 참석한 신 감독은 허무하고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혹독했던 한 시즌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는 신태용 감독. 특유의 직설 화법은 여전했지만 목표를 잃어버린 선장의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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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신태용 감독과의 일문일답


스플릿 라운드 미디어 데이 당시 표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당연하다. 솔직히 한 마디로 얘기하면 쪽팔렸다. 우리 팀 목표가 ACL, K리그 우승이었는데 하위 리그에 떨어져 있으니 참담했다.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 때 큰 소리 쳤는데 허풍쟁이도 아니고. 유효슈팅이 16개 팀 가운데 최고로 많았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여기 앉아 있는지 생각하니 답답했다.


시즌 초반 공언했던 목표들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어떤 심정이었나.


5월에 ACL 16강전에서 분요드코르(우즈베키스탄)에 패하기 전까진 걱정이 없었다. K리그 순위도 내가 생각했던 대로 7~8위를 유지했고. ACL은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하고 홈에서 16강전을 치러야 한다고 계산했다. 여기까진 잘 맞아 떨어졌다. 감독이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되지만, 그 뒤 벌어진 일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분요드코르에 일격을 당하면서 마음이 급해졌고 팀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가라앉았다. 울산과의 FA컵 16강전 역시 다 잡은 경기를 역전패했다. 여러 가지로 상황이 꼬인 것 같다.


'신공'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압도적인 경기가 별로 없었는데.


프로에서 모든 팀들의 실력은 백지 한 장 차이다. 다만 확실한 득점 찬스를 얼마만큼 살리는지가 중요하다. 우리 팀은 전반 2~3개의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경기가 너무 많았다. 골포스트, 골키퍼 선방 등 불운에 자주 울었다. 유효 슈팅수는 가장 많았지만 그건 전부 핑계다. 결국 골을 넣어야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1월 아시안챌린지컵을 기준으로 올 시즌 성남의 전력이 얼마나 발휘됐다고 생각하나.


60~70% 정도였다. 전성찬을 시작으로 주전 멤버들이 줄 부상을 당해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샤, 에벨찡요 등 외국인 선수들의 이적 문제로 팀 분위기가 흔들렸고 요반치치 역시 적응을 못해 베스트 멤버를 꾸리기조차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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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선수 영입이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내가 필요해서 뽑은 선수들이고 누구 탓을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작년 FA컵 우승 이후 '올해 농사 끝났다. 내년 ACL을 준비하면서 선수들을 영입해야 한다'고 구단에 요청했다. 올 시즌 스플릿 시스템이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구단에서도 좋은 선수들을 쉽게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마침 윤빛가람, 한상운이 있었고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데려왔다. 개인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고 순수하게 기량만 보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대목이다.


이적생들이 팀에 녹아들지 못한 것도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감독이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보니 선수들의 힘든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점은 없나.


나도 선수시절 힘든 경험이 많이 있었다. 꼴찌도 해보고 대표팀 문전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선수 심리를 잘 알고 있다. 프로는 감독과 지도자의 ‘밀당(밀고 당기기)’싸움이다. 감독 경력이 없었지만 꾸준히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선수시절 경험들이 잘 먹혔기 때문이었다.


선수들과 특별한 갈등은 없었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안팎에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팀이 발전하기 위해선 구단, 선수, 코칭스태프의 호흡이 중요하다. 솔직히 올해는 용병 문제로 동계훈련부터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선수들의 부상만 아니었다면 과감하게 엔트리에서 제외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게임을 치르다보니 팀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감독직에 대한 위기는 없었나.


없었다. 구단에 고마웠다. 아무리 프로지만 계속 잘하다가 한 번 못한다고 흔들면 누가 쉽게 감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직까지 우리 구단에 그런 문제는 없었다.


올 시즌 부진을 겪으면서 감독으로서 어떤 점이 부족했다고 느꼈나.


부족했다기보다는 많이 나태했고 자만했다. 조금 더 집중력 있게 상대를 분석하고 대비해야 했다. 선수시절에도 93~9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내리 꼴찌를 했다. 그 당시 주장이었는데 책임감을 많이 느꼈고 더 떨어지지 말아야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꼴찌를 해보니까 승부 근성이 되살아나더라. 이번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도 속으로 ‘내가 이런 결과를 만들었구나’하면서 반성했다. 지금 경험이 앞으로 좀 더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리라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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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K리그 올스타전에서 팬 투표 1위로 감독을 맡았다. 성적과는 별개로 인기는 더 좋아진 것 같다.


우리 팀 선수들은 쉽게 얘기하지 않지만 내 지도 아래 있다가 다른 팀으로 옮긴 선수들은 '신태용이 최고'라고 한다더라. 밖에 나가서 고생해봐야 집이 좋다는 걸 느끼는 것 같다.(웃음) 지금도 우리 선수들을 신뢰하고 자율을 보장해 주려고 노력한다. 상위 스플릿에 있는 감독들도 휴가를 3~4일 밖에 안 줬지만 나는 일주일이나 줬다.


굉장히 '쿨'한 감독인 것 같다.


솔직히 감독직에 연연하지 않는다. 능력이 안 된다고 지적받으면 지금이라도 나가겠다는 심정이다. 개인적으로 성남에 감사한다. 선수시절 한 팀에서 13년 동안 행복을 누렸고 감독으로도 4년차지만 나를 최고로 만들어 줬다. 미련 없이 물러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연연하지 않는다.


구단의 영향을 벗어나 소신대로 가겠다는 뜻인가.


내가 다혈질이라 있는 대로 말하는 편이다. 감독 권한을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바꿔 말하면 나도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사실 8월에 상주, 제주, 수원과의 3연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스스로 물러나려고 했다. 홈팬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홈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이 철학인데 항상 원정에서 이기고 홈에서 부진했다. 그건 상대 팀 팬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정말 안타까웠다.


결과적으로 상위 스플릿 진입에 실패했는데.


마지막까지 상위 스플릿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피스컵이 끝나고 전북전을 치르면서 전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느꼈다. 7~8위 정도는 충분히 할 거라 생각했고 남은 14게임에서 반전 드라마를 써보자고 계산하고 있었다. 하위 스플릿으로 내려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총재님께 내 이름으로 된 K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겨 드리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쳐서 죄송하다.


K리그 우승이 지도자로서 최종 목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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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꿈은 리그 우승했을 때 팀을 떠나는 것이다. 이회택 전 감독이 1992년 포항을 우승시키고 허정무 감독에게 바통을 물려주는 모습을 봤다. 진짜 남자답고 멋있다고 느꼈다. 나중에 감독되면 꼭 저렇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정상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이다. K리그 우승만 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텐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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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순 기자 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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