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수능 1위' 제주도와 장성군의 비결은?
[아시아경제 김도형 기자, 이상미 기자, 이민아ㆍ김현희 인턴기자]제주도와 장성고. 지난 30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성태제)이 발표한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분석 결과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역과 학교다.
제주는 언어 105.3점, 수리 가 106.9점, 수리 나 106.1점, 외국어 105.7점을 기록해 모든 영역에서 전국 16개 시ㆍ도 가운데 1위였다. 전체 평균과 비교할 때 각각 4.8점, 6.8점, 6.4점, 5.5점 차이로 앞서 나갔다.
특히 제주는 모든 영역에서 학교 간 표준점수 평균의 차이가 작은 것으로 분석돼 성적향상은 물론 학력 격차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분석에서 또 하나의 스타를 고른다면 단연 장성고다. 장성고만 분석 대상에 포함된 전남 장성군은 언어 116.5점, 수리 가 113.9점, 수리 나 125.1점, 외국어 119.6점을 기록해 수능 4개 영역 모두에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30일부터 이틀동안 아시아경제 기자들이 직접 제주도와 전남 장성고를 찾아 '1등 비결'이 무엇인지 밀착 취재했다.
◆ 서울에서 초등학생이 입학상담 하러 오는 장성고의 성적향상 비결 = 1985년 설립된 장성고는 개설 초기에는 학교소개 비디오를 만들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홍보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서울에서 초등학생까지 내려와 입학상담을 받는 학교가 됐다.
지난 30일 밤 직접 찾아간 장성고는 논 한가운데 세워져 있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암흑속에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학교는 학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성공의 비결은 사소한 것들에서 엿보였다. 학교에는 공중전화가 많았다. 80% 가량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장성고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휴대폰은 공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의 긴 복도 양쪽 끝에는 유리문이 설치돼 있다. 복도를 밀폐된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끝에는 에어컨을 한 대씩 놓았다.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복도 문을 닫고 적절한 내부 온도를 유지한다. 교실문을 열어 두어도 선생님들은 복도에서 효과적으로 감독을 할 수 있다. 큰 돈을 들여 도서관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이다.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수준에 따른 '선택'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황의갑 교감 선생님은 설명했다. 보충수업의 경우 방학이면 학생들의 희망을 조사한다. 늘 수학이 선택을 가장 많이 받는 과목이다. 교사가 모자라도 방법은 있다. 장성 지역의 학원 선생님을 모셔온다. 휴직 중인 선생님께 수업을 부탁하기도 한다. 유명한 선생님만 찾는 것은 아니다. 개념과 기본을 가르치고 1대1 수업을 통해 맞춤식으로 알 때까지 가르친다.
과목 선택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세부 과정까지 선택한다. 수학이라면 함수와 그래프 부분, 지수와 로그와 같은 단원을 기준으로 나눈다. 선생님들은 실명으로 이 과목을 맡고 학생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 선생님의 수업을 학생들이 싫어한다면 폐강 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을 위해 교직원들도 공부한다. 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들은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50분씩 월요스쿨에 참여한다. 학교정책과 수능시험 등에 대해 발표ㆍ토론하고 마인드 교육을 하는 식이다. 다양한 교육방법과 수업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공부할 때 학생들이 불편해 하지 않는지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 열정을 쏟는 선생님들의 거주지는 모두 장성이다. 바로 옆에서 돌보면서 가르칠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학교 철학에 따라 개교 때부터 유지된 원칙이다.
황 교감은 "선생님들이 일년 내내 쉬지도 못하고 고생하지만 더 드릴 것은 없다"면서 "다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책임지고 있다는 마음으로 함께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숙사 생활도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그대로 기숙사에 가서 자고 다시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은 학습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게 해준다. 5동의 기숙사에는 동마다 사감 선생님이 아이들을 책임 지도한다.
3학년 류정우 학생은 "지역 내에서 장성고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지만 말 그대로 면학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1학년부터 보충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데 취약한 언어의 경우 1학년 때는 평균 3등급에서 나쁘면 5등급까지 내려갔지만 선택수업을 통해 집중적으로 보완해 이제는 1등급을 받는다고 류 군은 덧붙였다.
지난해 수능을 치른 학생들은 장성고 설립이래 처음으로 전국 단위에서 선발한 학생들이다. 이미 우수한 학생들이 거둔 성적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뛰어난 학생들을 받더라도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장성고 1학년 학생들은 입학하기 전에 6번의 평가를 받았다. 부족한 부분과 과목을 찾아내서 매일 1시간씩 수업을 듣게 된다. 장성고는 지금 기숙사 한 동을 더 지으려하고 있다. 이 기숙사의 벽돌을 선생님들끼리 황토로 직접 만들고 있다. 아토피 등의 피부질환이 있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다.
◆ 제주도, 낙오 없이 함께 가는 '모다들엉' = 제주도는 어떨까. 31일 직접 찾아간 제주도 고교 2곳에서는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들까지 챙겨 함께 가자는 '모다들엉'이라는 제주도 특유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또 섬 지역의 특성상 학생들이 더 넓은 육지로 나가려는 특유의 열망이 군불 때듯 지펴지고 있었다. 공부는 간절해야 잘 할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제주 제일고교는 제주대 사범대와 협력해 20여명의 대학생들이 부진한 학생들을 위한 개인교습 및 상담을 해주는 멘토링 제도를 운영 중이다. 멘토 1명 당 3~5명의 학생들이 배정된다. 방학 기간에는 거의 매일 멘토의 지도를 받는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친구에게도 배운다. 1학년 학생들은 반별로 4명이 한 팀을 이뤄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같은 팀의 못하는 친구를 돕는다. 성적에 따라 고르게 섞어 학습팀을 만든다. 서로 도와가며 성적향상을 이룬 팀에게는 상장과 함께 장학금도 준다. '모두가 힘을 모아서'라는 뜻의 제주방언 '모다들엉' 문화의 고등학교 버전이다.
김광수 제주일고 교장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못하는 학생들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며 "모다들엉 문화란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도 학교에서 포기하지 않고 같이 끌어안고 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처럼 넓은 단위의 지역이 높은 평균 점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도 많아야 하지만 평균을 깎아먹는 학생들도 적어야 하는 게 사실. 성태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30일 2011수능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제주는 학교 간 성적 편차가 크지 않고 학력이 크게 떨어지는 학생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수도권 지역에 비해 사설교육기관이 미비하고 입시정보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은 공교육을 전반적으로 탄탄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교육 의존율이 다른 시ㆍ도에 비해 낮은 편인 제주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침 7시에 등교해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11시까지 학교 안에서 공부한다.
학원에 가기 위해 학교수업과 자율학습을 소홀히 하는 주객전도 현상은 제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 여건이 나쁘기 때문에 생긴 긍정적인 '역효과'다.
제주 제일고 3학년 홍은총 학생은 "취약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주말에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사교육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학교공부에 충실하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홍 군은 "또 모든 학생들이 서울에 가고 싶다는 의지가 높다"며 "육지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제주도는 고립된 섬이다보니 그런 욕구가 더 강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의 이런 의지를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선생님들의 노력도 남다르다. 김순찬 신성여고 교사는 "방과후학교를 운영할 때도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무학년ㆍ수준별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원하는 선생님과 수업을 스스로 선택해 방과후학교 강좌를 신청한다. 인기 있는 선생님의 수업은 빨리 마감되지만 학생들이 신청하지 않는 수업은 폐강된다.
김 교사는 "7개의 국어수업을 개설했는데 그 중 2개가 학생들이 신청하지 않아 폐강된 적이 있었다"며 "폐강된 선생님은 다음 학기 정규수업시간에 더욱 노력해 결국 방학기간 수업을 개설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전국 16개 시ㆍ도 중 제주도에만 있는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제주도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한 모든 학생들이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전에 '고교 신입생 예비교실'에 참가한다.
12월 말부터 2월 말까지의 기간을 활용해 고교과정의 국ㆍ영ㆍ수 수업을 20시간씩 들어 고등학교 공부를 준비하게 된다. 신성여고 3학년 오주희 학생은 "흘려 보내기 쉬운 시간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고 고등학교 3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이민아ㆍ김현희 인턴기자 faith100@
제주=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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