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중앙도서관에서는 '독서기관차' '독서마라토너'가 달려요"
대통령상 수상한 파주중앙도서관 박노성 관장의 사연
[아시아경제 황석연 기자, 김도형 기자]자신을 소개한다며 그가 내민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전화번호가 가지런히 적힌 책갈피였다. 책갈피 명함엔 '향기가 있습니다'란 제목의 시 한 수가 적혀 있다. 책값이 부담스러워 책을 멀리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도서관 사서'였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책갈피 명함의 주인은 다름아닌 박노성 관장(54ㆍ사진)이다. 그는 4년째 파주중앙도서관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이다. 책갈피 명함에서 보듯 평범한 도서관장이 아니다.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직업을 가진 그가 부임하면서 경기도 파주 시민들은 보석 같은 마을 도서관을 갖게 됐다.
◆ 그는 '독서 기관차'를 몰고 다닌다=지난달 11일 '평화누리 독서열차'가 조치원을 떠나 천안, 수원, 군포를 거쳐 금촌역까지 왔다. 연기, 천안, 수원, 군포의 어린이와 어른들 255명을 싣고서다. 이 열차를 금촌역까지 불러 온 장본인은 박노성 관장이다.
열차를 타고 온 사람들은 파주 출판단지에서 열린 가을 책 잔치에 참석하고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관람했다. 인기 동화작가인 송언씨와의 만남도 있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까지 동행한 이 아름다운 열차는 지난 5월 어린이날에도 대박을 터뜨렸다. 대전 한밭도서관과 천안시 중앙도서관, 평택시립 도서관, 한국철도공사, 파주 중앙도서관이 힘을 합쳐 기획한 결과였다.
이제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내년에는 목포와 부산에서 금촌역까지 '독서열차'가 기적소리를 내며 운행하게 된다. 도서관을 아는 사람들은 이제 그를 '독서 기관사'라고 부른다.
◆ 책장을 넘기는 '마라토너'가 되었다=그는 2600여명의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뛰는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다만 길 위를 뛰지 않고 책 속을 뛰어다닐 뿐이다. 이 거창한 마라톤 대회를 사람들은 '독서 마라톤 대회'라고 부른다.
파주시에서는 독서 능력에 따라 코스를 선택하게 한다. 풀 코스는 4만2195페이지, 하프 코스는 2만1100페이지, 단축 코스는 1만페이지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한 대회에 2600여명이나 되는 건각들이 참가 중이다. 대회는 11월 말까지 계속된다.
생소한 마라톤이라 내용을 물으니 박 관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독서 마라톤 대회의 기록물인 '독서 기록장'을 내민다.
지난 대회 풀 코스 부문에서 파주시장상을 받은 정하임 어린이(금호초 4학년)의 월계관 같은 독후 감상문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홍길동전을 읽고는 "나는 네가 정말 부러웠어. 나도 그런 힘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니까 말이야. 학교는 몇 초만에 가고… 또 다른 나를 만들어서 귀찮은 일도 시킬 수 있잖아"라는 편지글 형식의 독후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 책 콘서트의 지휘자로 나섰다=파주 중앙도서관이 벌이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보면 박 관장은 영락없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박범신 작가와 함께하는 북 콘서트(Book Concert)가 열리더니 황선미와 김정희, 박이문과 김경주 등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작가들이 그의 무대로 불려나와 감미로운 책 공연을 펼쳐야 했다.
북아트, 도서관 갤러리, 음악이 흐르는 그림책 이야기, 유아 종이접기, 꽃 관찰하기, 약이 되는 잡초음식 조리, 노트필기 수학학습법 부모교육, 행복한 돈농사....... 미술, 음악, 놀이, 생활, 교육, 문화에 재테크까지.
파주 시민들은 경계 없는 프로그램에 박수 갈채를 보내 답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엔 도서관이 영화관으로 탈바꿈한다. 아이들을 위한 만화 영화도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다.
◆강의가 즐거운 사서 관장님의 글쓰기 수업이 대박났다=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박 관장은 노는 토요일이면 신세대 훈장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한글날인 9일에도 그는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동안 초등학교 3, 4학년 학생들에게 '이야기로 외우는 한자 구구단'을 가르쳤다.
열다섯 명가량의 아이들이 참여한 수업은 지루하지 않았다. 진도를 나가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웃어야 한다는 것이 박 관장의 신념이다. 도서관을 친근하게 만들어서 미래의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런 전략이 들어맞은 것인지 파주 도서관은 어린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하루 3000명이 넘는 방문객들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박 관장의 이런 노력 덕택에 파주 중앙도서관은 '2010 전국 도서관 운영평가'에서 전국 644개 공공도서관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 대통령상을 받았다.
수상 얘기를 물으니 박 관장은 꼭 30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진로를 찾아 방황하던 그 시절, 그는 매일같이 서울 정독도서관을 찾으며 모범 이용자 표창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관장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박 관장은 도서관을 평생의 일터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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