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딸의 특혜채용 파문으로 논란에 도마위에 올랐던 유명한 외교통상부 장관이 2년 7개월간의 '최장수 장관'명예를 접고 결국 낙마했다. 예기치 못한 돌출악재였다. 취임 첫해부터 악재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도덕적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오뚜기처럼 버텨온 유 장관 그러나= 취임 첫해부터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라는 메가톤급 악재를 겪었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 파동과 미국 국립지리원의 '독도분쟁 지역화' 사태로 인해 야당으로부터 외교실정(失政) 공세에 시달렸다.

이듬해인 2009년에는 '말실수'로 야당으로부터 사퇴압박에 직면하기도 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민주당 천정배 의원을 향해 "여기 왜 들어왔어. 미친 ×"라고 말해 논란을 빚은 것이다.


지난 7월말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ARF 직후 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친북 젊은이들은 북한에 가서 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또다시 정치적 논란에 불을 지폈다. 당시 재.보선을 앞둔 야당은 유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맹렬한 공세를전개했다.

이에 따라 유 장관은 고비때마다 교체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으나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굳건히 자리를 지켜냈다. 복잡한 외교적 현안들을 노련하게 대처해내는 경륜과 외교적 숙련도를 대통령으로부터 평가받았다는 관측이다.


천안함 사건이후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흐름 속에서 사상 첫 한.미 '2+2'(외교.국방장관) 회의를 통해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대외적으로 과시했고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의 성공개최를 지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도 얻었다.


외교가에서는 지난달 개각때 유 장관이 유임되자 '3년 이상 재임'이라는 기록을 세울 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1980년 9월 박동진 장관이 물러난 이후 30년간 3년 이상 재직한 외교장관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후속 인사조치 빨라질듯= 유엔총회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둔 외교가에서는 후임인사가 발빠르게 진행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교가에서는 김성환(외시 10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거의 '0순위'로 거론되는 분위기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외교2차관을 거쳐 2년여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맡고 있어 주요 외교정책의 맥을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는 인물이다. 유 장관이 지켜온 정책기조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꾀할 수 있다는 평가다. 서울 출신인 김 수석은 높은 도덕성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갖추고 있어 '친정'인 외교부 조직내부의 신망이 두텁다.


이태식(외시 7회) 전 주미대사도 하마평에 단골로 오른다. 유 장관과 동기인 이 대사는 2005년 9월부터 주미 대사에 임명돼 3년이 넘도록 대미관계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추진업무를 관장해왔다. 경북 월성 출신인 이 전대사는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 넘어와서도 미국 부시행정부와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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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외시 8회) 전 러시아 대사는 유엔과장과 국제기구정책관, 주중 대사관 공사, 대변인, 외교2차관을 두루 역임하면서 다자와 양자외교에서 내공을 다져왔고,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인물로 통한다. 특히 친화력이 좋은데다 리더십을 갖추고 있어 안팎으로 신망이 두텁다.


이 전 대사는 대변인 시절이던 2005년 8월 '때로는 마음 가득한'이란 제목의 첫 시집을 내고 지난해 5월 부임지인 모스크바에서 '또 다시 떠나면서' 제하의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한 '외교관-시인'이다.


양낙규 기자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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