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문과'나 '이과'로 구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마치 남녀를 구분하는 것처럼 당연시한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출신에 따른 이같은 구분을 무조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출신을 핑계로 자신의 잘못이나 모자람을 정당화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면 문제가 된다. 혈연, 지연, 학연을 한국병의 원인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2년의 경험을 근거로 문과와 이과를 따지는 '과연'(科緣)의 부작용도 대단히 심각하다.

과연의 폐해는 패거리 문화를 유도하는 혈연, 지연, 학연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과소평가하고 더 이상의 노력을 포기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 문과 출신은 수학과 과학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할뿐 아니라 자신이 모른다는 이유로 그 효용성과 가치를 철저하게 거부해 버린다. 이과 출신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철학과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을 아무 쓸모없는 탁상공론이라고 굳게 믿는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처음부터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근대화를 꿈꾸던 시절에는 그런 구분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선진국을 흉내 내는 것이 목표였던 추격형 사회에서는 좁은 분야의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제는 규격화된 교육이 걸림돌로 변해버렸다. 문과와 이과로 구분된 교육으로는 창조적 선진사회가 요구하는 폭넓은 교양과 함께 과학적 합리성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갖춘 인력을 길러낼 수가 없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은 불합리할 뿐 아니라 오래 전에 버렸어야 했던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뜻이다.


우선 학교부터 완전히 바꿔야 한다. 물론 지금도 형식적으로는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없다. 다만 학생들의 '적성'과 '선택'을 존중해준다는 핑계로 문과와 이과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현실은 차제에 확실하게 개혁해야 한다. 문과와 이과는 학생의 적성에 따른 적절한 구분도 아니고 학생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도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수학이나 글 읽기나 글 쓰기를 모르는 것은 적성이나 선택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학교 교육을 통해 반드시 바로 잡아줘야하는 심각한 장애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교육의 성격도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대학 교육이 일반화된 오늘날 고등학교는 어쩔 수 없이 모든 학생을 위한 '교양'을 가르쳐야 한다. 국어를 '독서', '작문', '문법' 등으로 난도질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년부터 도입되는 융합형 '과학'과 마찬가지로 교양 수준의 국어의 모든 내용을 합친 융합형 '국어'를 가르쳐야 한다. 사회도 '역사', '지리', '경제', '윤리'로 쪼갤 것이 아니라 교양 수준의 융합형 '사회'를 가르쳐야 한다.


정부와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실효성도 없는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를 외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전공에 따라 차별화된 업무를 맡길 가능성도 없는 학사급 인력을 채용하는 경우에 굳이 전공을 따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양한 전공 배경을 가진 사원들을 섞어 놓아야 진정한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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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문과와 이과의 구분에 상관없이 최소한의 과학상식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을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다. 국회의원과 정치인부터 '과학을 모른다'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대단히 수치스러운 사실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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