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스스로 몸에 새긴 패션, 타투
패션 아이템의 본질 <3> 타투
[패션컨설턴트 김선아]그 여자는 심드렁한 사이즈의 블랙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몸통과 소매가 낙낙해 그가 하고 있는 일을 방해할 리 없어 보이는 티셔츠의 소매 밑으로 그림이 보였다.
소매에 반은 가려진 걸로 보아 족히 손바닥만큼은 될 크기의 그림, 타투(Tattoo).
'나 타투한 사람이야'라는 과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타투 했다고 내놓고 다니나? 괜히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봤다면 슬그머니 부끄러워질 정도로 견고한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Yoji Yamamoto)의 딸인 디자이너 리미(Limi)였고, 그의 타투를 본 건 어느 패션지의 인터뷰 비하인드 화보였다. 그 견고한 아우라가 착각이 아니었던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몇 년 뒤였던 것 같다. 그는 아버지의 후광을 마다하고 '리미후(Limi Feu)'라는 이름으로 파리 컬렉션을 시작했다.
리미가 타투에 대한 깊은 인상을 준 건 사실이었지만 내가 타투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내 안에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한 번도 의심치 않았던 꿈이고 인생의 방향인 '패션'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가졌던 시기였다. 다니던 대학은 휴학을 했고 복학 대신 자퇴 쪽으로 마음이 기운 상태이기도 했다.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나의 꿈에 내가 의심을 품는 날이 올 줄은 몰랐고, 적잖이 충격을 받아서 어떤 다짐이 절실했다. '패션'을 떠나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며 살겠노라는 다짐이 바로 타투였고, 타투를 하면서 동반되는 육체적 고통은 그 다짐의 '기억'이었다. 현실적이고 직감적인 통증은 나약했던 내 젊음에 멋진 경종이 돼 주었다.
"이번 헤나는 오래 간다?" 일회성인 헤나는 곧잘 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헤나를 한 거라 생각하셨던 엄마.
"이건 평생 가." 담담하게 대답하는 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하신 한 마디, "시집은?"
그게 다였다. 더 이상 타투에 대한 언급은 없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눈물을 삼킬 정도로 엄마께 감사했던 일이 생겼는데, 한 동네에서 십수년을 살다보니 누구누구네 큰 딸이 '문신'을 했다며 수군대는 아주머니들에게 엄마가 단호하게 한마디를 하셨더랬다.
"○○엄마~ 우리 큰 딸은 패션을 해서 스타일이 좀 독특한 거예요. 창의적인 일 하는 사람이라 타투도 하고 그러는거야."
앞으로는 애 지나가도 옆에서 수군대지 말라고 덧붙이셨는지는 몰라도 더 이상 동네에서 아주머니들이 힐끔 쳐다보는 일이 줄었다.
그만두려던 학교는 무사히 졸업을 마쳤지만 평범한 일을 지양하고자 선택한 방법이 타투였는지라, 신기하게도 그 때부터 창의적인 분야의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타투는 피부에 새긴 그림, 그 이상이 아닐지도 모르나 나 스스로에겐 '패션', '크리에이티브' 그 자체인 것이다.
익숙해지면 잊는다. 사람에 대한 고마움도, 어떤 일에 대한 끓어오르는 다짐도.
무심코 반팔 티셔츠를 꺼내 입고 거울을 바라보다 예전의 그 패션지 화보를 오버랩시킨다. 화보 속의 디자이너, 리미만큼이나 이제 나도, 제법 견고해졌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요량이 아닌, 내 젊은 날의 다짐이 거울 속에서 빛을 내고 있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가도 내가 새긴, 다짐을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옷을 입는 스타일도 바뀌고 바뀌어서 지금은 클래식한 펜슬 스커트나, 좋은 소재감의 드레스를 즐겨 입는데 타투가 더해지니 조금은 낯선 룩(Look)으로 완성된다. 그럼 뭐 어떤가. 이게 나인걸.
사실 처음 타투를 '들킨' 날 엄마께는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는데, 나중에 결혼할 때 입을 웨딩드레스 디자인을 미리 다 생각해놓고 한 타투랍니다! (힌트는 그레이스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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