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시작할 즈음 옷을 벗은 나목은 봄이 되면 새옷을 입겠지만, 우리 인간도 파릇파릇 새싹 돋아나듯 새로운 봄날이 올수 있을지 걱정한 적이 있습니다. 유난히 길었다고 느껴지는 겨울이 이제는 저만치 물러나고, 가슴 설레며 맞이할 수 있는 봄이 가까이 온 것을 햇살의 표정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제주 서귀포, 이중섭의 마당에는 매화가 피었습니다. 빨간 동백꽃도, 노란 유채꽃도 봄을 알려줍니다. 사진으로 본 허름한 초가집이 이중섭이 기거하던 곳이라 생각하며 무척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가보고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초가집 한쪽에 있는 부엌보다 더 작은 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던 것입니다. 깨어져 흩어진 돌들이 지탱하고 있는 문턱을 넘어 흙바닥의 부엌으로 들어가면, 작은 항아리 두 개와 냄비만한 아주 작은 무쇠솥 두 개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눕기에도 좁은 방 선반 위의 흑백 사진 한 장, 벽면에 붙은 시 한 편. 그게 전부였습니다. 학교 다니면서부터 소를 많이 그렸다는 화가의 유일한 시 입니다.
'소의 말'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주인집 방문 앞에 ‘사람이 살아요’라고 적힌 팻말과, 마루 밑에 엎드려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보며 이중섭을 기억하고자 하는 방문객에게 많이 시달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41세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작가’를 누군가는 무릉도원에서 놀다가 ‘환쟁이’ 숙명을 띠고 이 땅에 유배 온 신선이라 했습니다.
그는 일본 점령기에 일본으로 유학, 일본 여인과의 결혼, 한국전쟁 발발, 남으로 남으로의 피난 생활, 어쩔 수 없이 떠나 보내야하는 가족들을 절절히 그리워하다, 병으로 홀로 쓸쓸히 세상과 이별한 한국 근대사와 아픔을 같이한 화가입니다. 일본 유학시절 프랑스어를 배우고 피카소와 루오에 심취했던 그는 꿈도 많고 열정도 있었을텐데 시대가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언덕 위에서 서귀포 칠십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중섭 미술관에 전시된 반듯한 필체로 적힌 아내 이남덕(마사코)의 편지를 찬찬이 들여다보면 애잔한 그리움이 마음으로 전해옵니다.
남편의 소식을 알고자 구상 선생님께 보낸 아내의 편지에서, 지독한 가난과 고독 속에서 작은 그림을 넣어 아내에게 쓴 남편의 편지에서 처절한 슬픔을 느낍니다.
전쟁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뛰어넘어 남국의 이상세계를 표현한 작품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에는 평화로움이 배여있고, 부인과 두 아이를 데리고 달구지를 타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는 그림 ‘길 떠나는 가족’에는 서러운 이별이 담겨 있습니다.
이중섭 거리에서 마주치는 ‘울부짖는 소’, ‘흰 소’, ‘꼬리가 물린 채 서로 죽이려는 야수’, 복숭아 그려진 도원‘,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물고기를 안고 게를 탄 아이‘등의 작품에서 품어 나오는 절절한 서러움과 슬픔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세월이 지나도 우리가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기억의 공간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오래 좋은 모습으로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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