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놀아보면 일이 없는 백수가 더 피곤하다고 합니다. 노는 메뉴도 구상해야 하고 처지가 비슷한 친구도 사전에 물색해야 하며, 적은 돈으로 오래 놀 수 있는 공간도 미리 확보해 놓아야 합니다.
특히 매일 놀 수 있는 체력은 필수조건입니다. 그래서 "백수가 더 부지런해야 그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도 생겼답니다. 일없는 백수와 끈 떨어진 정치인들이 나름대로 낭인생활의 노하우가 있어야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한때 이름이 알려졌던 정치인 중에는 서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잘 모르고 궁금할 때가 생기기 마련이죠. 백수가 백수생각을 하며 험한 시대를 공존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눈물겹지 않습니까? 많은 대한민국 시인들의 현실도 실은 백수와 오십보백보 차이입니다.
정치인들은 정치를 떠나면 알아주는 이도 없고 할 일도 별로 없는 경우가 태반이니, 낙선하고도 자기일이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은 행복한 경우죠. 그래서 당선을 위해서라면 어떤 무리수를 써서든지 무슨 줄이라도 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법입니다.
낙선했다고 해서 계속 밥을 얻어먹기도 그렇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으니 지출이 수입보다 많을 수밖에 없겠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승용차를 포기하고 전철을 타는 것도 여간 용기가 있지 않고선 가능한 결단이 아닙니다.
그 많은 후원회도 금배지가 있을 때 제대로 가동하는 것이라, 4년 후를 대비해서 유권자와 지인들을 늘 관리하고 만나야하는 처지에서 자칫하면 정치브로커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무려 7번이나 도전한 총선에서 겨우(?) 두 번 당선되었던 정치인 조일현의 경우 근 30년 세월이 얼마나 버티기 힘들었을까를 짐작하게 합니다. 도대체 그는 무슨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감히 정치인이 되겠다고 결심했을까요?
벌써 잊어버린 분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4년여 전인 2005년 11월 23일 ‘쌀 관세화 유예 10년 연장 재협상결과에 대한 국회비준’ 통과문제로 국회는 물론 온 나라 농민단체들이 격렬하게 반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든 국회의원들이 다음 선거를 의식하여, 또는 자신의 지역구와 이해관계 때문에 본회의장에서 의장이 토론에 부친 안건에 대해 감히 찬성도 반대도 못한 채 침묵하고 있었지요. 그때 당당하게 또 차분하게 자신의 논리로 오직 국민을 향해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겠다고 나선 정치인이었습니다.
소속정당을 떠나서 대부분 의원들 사이에 온갖 고성과 험한 말들이 오가며 본회의장 발언대를 사수하려고 멱살잡이까지 하는 그 순간에, 사진 한 장만을 들고 미래를 향해서 발언대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던 단 한 명.
그날 그가 마이크도 없이 10여분간 육성연설을 하는 순간은 우리 의회 역사에서 정말 불가사의할 정도로 기이한 장면이 연출되었답니다. 여당도 야당도 심지어 발언대를 점거했던 민주노동당 의원들까지도 그의 주변에 꼼짝 않고 선 채로 다들 진지하게 경청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정치인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시 그 현장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깨달았다는 의원들이 많았습니다. ‘정치인의 용기란 어떤 것인가’를 얘기할 때 그날 그 순간 본회의장에서 일어난 ‘조일현의 육성연설’을 말하는 정치부 기자들도 있다지요.
그는 선거일에 임박하여 강원도의 한 지방신문이 근거 없이 보도한 루머로 인해 명예도 금배지도 다 잃은 후, 5년이 넘는 소송을 통해 마침내 명예를 회복한 ‘의지의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건국 이후 어느 정치인도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승소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겠다는 정치인이 언론사와 시비를 해서 좋을 게 하나 없다'는 정치권의 오랜 관례를 깬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과를 하라’고 근 1년 동안 해당 신문사에 기회를 주었으나 응하지 않고 무시했던 게 그를 분노하게 만든 셈입니다. 결국 강원도 산골 출신의 한 의원에 의해 ‘아니면 말고 식’의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를 구체적인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낭인시절에 그는 국내에서 받았던 행정학 박사학위로 대학강단에서 강의도 한 학구파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성에 안 차서 중국으로 건너갔고, 베이징대학 유학 중에 파견교수 신분으로 강의를 병행하며 법학박사 학위를 받아 냈습니다.
그것도 45세란 다소 늦은 나이에 중국어 한마디 모른 채 무조건 떠나서 2년 6개월이란 최단 기간에 따낸 박사학위이기에 더욱 값진 도전이 되었습니다.
서너 시간 자면서 강행한 공부 탓에 건강에 치명적인 위기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병원과 강원도 고향(홍천. 횡성)의 선거현장을 오고간 끝에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2004년 재선에 성공합니다. 여당의 원내 수석부대표와 국회건설교통위원장을 거치며 잘나가다가 또 검찰의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집을 옮기며 차용증을 써주고 전세자금을 자기앞수표로 받았던 정당한 과정이 빌미가 되어 기소되었으나,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후 대법원으로 넘어가 최종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판결 선고 때마다 아들딸과 손을 잡고 재판부와 방청객을 향해 감사인사를 올린다는 상습적인(?) 무죄피고.
그는 국제심판들의 편파적인 판정으로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올림픽행 티켓이 무산되자, “계란을 가지고 가지 말라”는 주위의 충고를 무시하고 “그러면 돌을 가지고 가라”며 임원과 선수단을 독려하고, 국제적인 관심사로 만들었던 당시의 뚝심 있는 핸드볼협회 회장이었습니다.
기어이 남녀핸드볼 팀의 재경기를 성사시키고 베이징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도록 뒷바라지 한 주역이었지요.
그가 틈틈이 쓴 ‘루이스 호숫가에서’란 시 등 20여편의 시는 저명한 작곡가들에 의해 창작가곡으로 변신되어 몇 곡은 학생들의 교과서에도 실렸답니다. 그 곡들은 3200석이 꽉 들어찬 세종문화회관에서 소프라노 이정자 교수에 의해 불리어지고 실황공연이 CD로도 나왔으니 엄연한 프로작사가이기도 합니다.
재판은 재판이고, 자기가 할 일을 찾아내서 하는 배짱 있는 정치인에게 시련은 오히려 심지를 더 강하게 할뿐이었습니다. 믿기 힘들지만 낙선을 하며 오히려 감동을 주는 ‘인간승리’를 연출한 정치인이지요. 홍천에 건립 중인 ‘(주)순우리 식품’은 그가 정치를 떠나서 진정 고향의 일자리창출과 소득증대사업을 위한 구상을 하며, 중국수출까지 고려한 영농전문회사라고 합니다.
긴 겨울 꽁꽁 언 논밭의 묵은 뿌리에서 자라난 싱그러운 봄채소를 사람들은 ‘도사리’라고 부른답니다. 척박한 토양을 헤치고 온 몸으로 일어서는 그 도사리의 삶을 닮은 역정.
평소 내각제에 남다른 소신을 갖고, 이른바 ‘DJP연합’을 맨 먼저 제안한데다 내각제에 대한 논문까지 쓴 그를 배려했을까요? 바야흐로 정치지형은 그런 정치인들이 소신을 펼 수 있는 공간을 서서히 내주고 있는 듯 보입니다. 오는 6·2일 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 열리는 막바지 출판기념회들이 그런 조짐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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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번 봄은 꽃보다 정치가 먼저 만발하는 계절이 될 듯합니다. 시(詩)를 쓰며 침묵했던 한 정치인의 자서전 제목이 <도사리의 꿈>이라니 적잖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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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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