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던 장외 파생상품에 미국 정부가 '메스'를 들었다. 월가의 공룡 금융회사를 무너뜨리며 글로벌 신용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했던 이른바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System)에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질 전망이다.

금융위기 이후 천문학적인 자금을 금융권에 투입하며 시스템을 살리는 데 급급했던 미국 정부가 당근 대신 채찍을 들고 나선 것이어서 주목된다.

◆ 전세계 680조弗, 감독 무풍지대 = 파생상품은 불과 3~4년 전만 해도 선진 금융기법의 총아로 불렸다. 구조화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증권맨은 '금융 공학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뛰어난 발명가로 대접 받았다.

하지만 복잡하고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파생상품은 사상 초유의 신용위기를 일으킨 원흉으로 전락했다. 파생상품은 워런 버핏으로부터 '금융권의 대량 살상무기'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림자 금융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거래 투명성의 결여와 무분별한 레버리지 창출, 리스크 분산이라는 본연의 목적과 달리 실상 리스크를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한 상품 구조가 문제였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집계에 따르면 전세계 장외 파생상품 시장은 680조 달러에 달한다. 신용부도스와프(CDS)만 36조 달러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파생상품은 금융회사의 핵심적인 수익 엔진인데도 감독 당국은 물론이고 애널리스트와 투자자의 시야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발행 시장만 있을 뿐 유통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파생상품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적정 가치라는 개념이 없고, 상품 개요나 거래 현황에 대해 공시할 의무도 없다. 금융회사는 파생상품 보유 내역에 대해 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꺼졌을 때 금융회사는 가치 산정 자체가 힘든 파생상품을 장부에 잔뜩 끌어안은 채 추락했다.

미국의 경우 JP모건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등 4개 금융회사가 파생상품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네 개 금융회사 모두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곳이라는 데서 파생상품의 유해성(toxic)을 짐작할 수 있다.

◆ 규제 어떻게 이뤄지나 =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이 밝힌 규제 방안은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림자 금융을 제도권으로 흡수하겠다는 것.

미국 재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등 주요 감독기관은 파생상품 감독을 위한 법안 초안을 13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했다.

초안의 내용에는 파생상품 거래와 결제를 일원화하기 위한 결제소를 설치,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상품들을 공식적인 거래소로 흡수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 파생상품 거래를 위한 증거금율과 정보 공개 의무 등이 포함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기업과 금융회사가 특정 상황에 대비해 사모 형태로 발행한 상품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상품 구조와 거래 내역에 대해서는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법안 제출 후 가이트너는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파생상품을 거래소와 같은 전산시스템을 통해 거래하도록 해야 하며, 이를 통해 투명성을 제고하는 한편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자거래시스템을 도입해 시장 유동성을 높이고 가격의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발행부터 거래 과정까지 파생상품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소(CFTC)가 파생상품 감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거래위원회(SEC) 역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일정 부분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 '당근'에서 '채찍'으로 = 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파생상품과 함께 정부 역시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는 힘든 입장이다. 문제가 일파만파 확산되자 학계에서는 정부가 감독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위기의 싹을 키우고 말았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주요 20개국(G2) 재무장관 회의에서 금융시스템에 대한 감독 강화가 핵심 논제로 부상했던 것도 이 때문. 신용위기 촉발 후 대규모 구제금융으로 쓰러지는 금융회사에 일으켜 세우는 데 급급했던 미국 정부가 채찍을 꺼내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7일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발표, 19개 금융회사에 대한 자본적정성 평가와 경기 악화에 대비해 확충해야 할 자본 규모의 파악을 마친 상태다. 그리고 일부 금융회사가 상환하는 구제금융과 집행하지 않은 재원으로 중소형 금융회사 지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규제 카드를 꺼내든 것은 시스템 정상화를 위한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월가에서도 이를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혹독한 위기를 초래한 배경을 이해하는 만큼 정부의 규제 움직임에 반기를 들 수 없는 상황"이라며 "문제는 규제를 시행할 것인지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업계를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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