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L";$title="박용현 (주)두산 대표이사 회장";$txt="박용현 (주)두산 대표이사 회장";$size="280,392,0";$no="2009032716510442575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두산그룹의 첫 회장을 맡은 박용현 (주)두산 대표이사 회장은 ‘드러나지 않은 큰 잠재력을 품은 준비된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외과의사 출신으로 오랜시간을 병원에서만 지내온 탓에 경영인 보다는 학자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박용현 회장은 어릴 때부터 조부인 두산 창업주와 선친인 박두병 전 두산그룹 초대 회장으로부터 경영을 배웠다.
서울대학교 의학과를 나와 서울대학교대학원 외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06년 2월 퇴임할 때까지 외과 의사와 교수로 재직했다. 1993년부터 서울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장, 진료부원장을 거쳐 1998년부터 제11대, 12대 병원장에 오르는 등 10년여 동안 주요 보직을 맡으며 경영을 담당해 왔다. 서울대병원장 시절에는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조직문화를 개혁해 병원의 문턱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낮췄으며, 조직원의 의식 변화와 서비스 질 향상에도 앞장서는 등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특히 공공기관 이었던 서울대 병원에 기업경영 마인드를 접목시켜 적자경영이던 서울대학교병원의 수익성을 개선하고, 공익성 강화를 위한 재원 확보 차원에서 서울시 역삼동에 건강증진센터와 분당 병원을 건립했다. 이와 함께 박용현 회장은 조직 통폐합과 보직 임기제를 과감히 도입해 이른바 '철밥통'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과감히 탈피시켰다.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에 서울대병원은 민간 설립 대형병원에 버금가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됐으며 개인적으로는 경영혁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박용현 회장에 대해 형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의사지만 장사꾼 기질이 있어 서울대병원을 개혁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서울대 병원의 틀을 바꾼 박용현 회장은 “오랫동안 병원에 몸담으면서 외과 교수로나 병원 행정가로서 역할을 다했고, 더 이상 기여할 것이 없으며, 후학들에게 길을 터줘야겠다”면서 정년을 3년 남기고 은퇴해 2005년 11월 두산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맡은 첫 번째 자리는 그룹 내 학술장학재단인 연강재단 이사장으로, 두산의 사회공헌활동을 총괄하면서 지속경영의 마인드를 쌓았다.
박용현 회장은 능동적인 사회공헌 활동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연강재단 이사장으로서 연강학술상을 제정하고 저소득층 자녀의 방과 후 지원 등 학술과 장학 사업을 강화해 왔다. 또한 두산아트센터(구 연강홀)에 250억원을 투입해 국내에서 두 번째 뮤지컬 전용극장을 만들어 기업의 사회문화활동인 ‘메세나’의 전진기지로 삼고,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적극적 지원하는 등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2007년 2월 두산건설 회장에 취임한 박용현 회장은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한편, 두산건설의 해외진출 확대를 위해 러시아 법인,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지점 설립을 주도하는 등 경영능력을 증명했다.
이를 통해 박용현 회장은 2006년 도급순위 15위이던 두산건설을 2008년 11위로 도약시켰다.
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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