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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서] 정부 70년대 미국 눈치보며 소련과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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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1970년대 후반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추진할 당시, 미국도 북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우려를 했던 것으로 11일 공개된 외교통상부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당시는 미국의 중국과의 수교를 앞두고 있는 등 국제적으로 냉전의 기운이 서서히 걷히고 데탕트 분위기가 스며들던 시기였다.

◇ "우리가 소련에 접근하면 미국도 북한에 가까이 갈 수 있어"

중앙정보부는 냉전시대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면서 미국의 대응을 걱정했다.

중정이 1978년 9월 제작해 외무부에 전달한 '미국 국무부 차관보, 한·소 접근에 대한 우리측 견해 타진' 자료를 보면, 정부는 미국이 겉으로는 한·소 관계개선의 주선자를 자처하지만 속으로는 동북아정세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중정의 자료는 리처드 홀브룩 당시 미 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가 78년 9월15일 김용식 주미대사를 만나 밝힌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홀브룩 차관보는 당시 "미국은 한소관계 개선을 적극 찬성할뿐만 아니라 한국이 소련에 대한 관계개선을 위해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면 주선할 용의가 있다"면서 "한국이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합법성이 과시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공과 북괴가 밀착돼가고 있는 가운데 한소관계에 진전이 있을 경우 정세는 대단히 복잡해질 것이며 중공측으로서는 매우 불리한 입장에 서게될 것이니 미국은 이미 중공측에 중공이 먼저 한국과 접촉할 것과 북괴로 하여금 한국과 직접대화를 갖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촉구했다"고 소개했다.

중정은 자료에서 "홀브룩 차관보의 발언은 미국은 한소관계를 발전시켜 미·일·중 3각협력체제 구축에 따른 소련의 한반도정세 조작 가능성을 사전에 저지하겠다는 등 미국의 대한반도 기본정책의 일환으로 보인다"면서도 미국의 저의를 파악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중정은 특히 "한국과 소련의 접근이 계속 확대돼 나갈 경우 미국도 북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려는 면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현재 미국과 북괴의 접근여건이 동구의 여러나라를 비롯한 제3국을 통해 이미 성사돼 가고 있을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 중국, 소련 접근 여건이 북괴의 대 미국, 일본 접근 여건보다 극히 불리하다"고 우려했다.

중정은 "우리는 한·소 접근을 미국의 대 동북아 전략 범위내에서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구해 나갈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면서 "소련에 대한 직접 접근 노력은 미국과 중공의 반발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중정은 또 "초기단계에서는 소련과 관계가 깊은 제3국을 통해 비밀대화 통로를 우선적으로 만들어 한·소 접근이 미·일의 대북괴 접근에 뒤지지 않도록 사전에 적극 대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지었다.

◇ 중국과 소련을 두고

당시는 중국이 북한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하는 반면 소련은 남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 정부는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다.

덩샤오핑 당시 중국 부수상은 "주변국의 개입없는 남북대화가 이뤄져야 하나 그 전제로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북한에 지지를 보냈다.

반면 소련은 당시 UN총회 기조연설에서 처음으로 한반도 문제에 침묵하고 현지 언론에서 한국을 '대한민국'이라고 정식으로 부르는 등 한국에 대해 다가서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두고 중국은 소련이 북한을 배신하고 한국과 야합한다고 비난하고, 소련은 중공이 미국과 은밀히 접근하면서 소련과 북괴 간을 이간시키고 있다고 공격했다.

중정은 78년 11월 작성한 '중·소의 최근 대한태도와 우리의 대응책' 자료를 통해 "중공은 북괴를 확고하게 장악해 베트남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결의를 반영하고 있으며 소련은 한국에 대한 유연한 태도로 북괴를 자극해 북괴의 대중공 편향성을 견제하려는 저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중정은 이어 "이러한 정세변화의 중대성은 물론 동북아 평화정착에 있어서의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정치적 책임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중국과 소련에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정은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미국·일본·중공 협력체제'를 통한 직·간접적 대화통로를 모색할 것을 제시했다. 또 소련과는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제3국을 통해 정치적 비밀대화 통로를 개설할 것을 제안했다.

중정은 특히 "소련에 접근하기 위해 과거의 산발적인 공작을 지양하고 대소 영향력이 있는 '제3국 주재 우리공관'을 선정, 관련 업무를 전담케하는 과감한 전술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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