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藥국가]⑥UNODC "초국가 범죄조직, 한국 노린다"
■ 1장. 마약이 우리 사회를 덮쳤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 전문가 패널 인터뷰
"공급 주도형 시장 확장으로 마약 늘었다"
마약, 지하경제 팽창 → 부패 조장할 우려
전 세계 마약류 범죄 대응을 진두지휘하는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초국가 범죄 집단이 한국과 같은 고소득 국가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마약류 수요 증가는 범죄조직이 공급을 늘려 마약에 노출되는 사람을 늘리려는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시아경제는 급변하는 국내외 마약류 범죄 양상을 분석하기 위해 UNODC 측에 진단을 의뢰했다. UNODC는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범죄 분석가와 정책 전략가로 구성된 전문가 패널의 통합된 분석을 회신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고소득 국가들이 직면한 마약 위기를 '공급 주도형 시장 확장'으로 규정하며 경제 전반에 미칠 파괴적 영향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마약 카르텔, 한국 같은 고소득 국가 노린다
UNODC는 '지역적 관점에서 한국 등을 겨냥한 마약 카르텔의 전략적 변화'를 묻는 말에 "최근 동아시아 마약 시장에서 목격되는 현상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지난 10년간 꾸준히 축적돼 온 결과"라고 진단했다. 이어 "초국가 범죄 집단은 한국 같은 고소득 국가를 목표로 삼고 있다"며 "급격히 늘어난 공급은 범죄 집단의 전략으로 한국이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UNODC 전문가 패널은 "아시아 지역 마약 공급은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며 2024년 동아시아·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메트암페타민(필로폰) 236t이 압수됐다고 밝혔다. 1회 투약량을 0.3g으로 계산하면 약 78억6000만회 분이다. 전 세계인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이는 역대 최고 기록으로, 단순 압수량이란 점을 고려하면 실제 공급량은 훨씬 클 거란 게 UNODC 분석이다.
UNODC는 이 같은 변화를 이끈 주요 배경으로 온라인 유통을 꼽았다. 마약류 생산은 더 유연해졌고 조직이 규모를 확장하기도 쉬워졌다는 것이다. 전문가 패널은 "온라인 범죄 생태계 출현으로 마약 공급망은 훨씬 파편화했다"며 "소셜 플랫폼 판매, 암호화폐 거래 등은 전통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수많은 고객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박왕열 사건'을 언급하며 "온라인 조율과 분산된 유통, 탐지·차단이 어려운 국경 공급망(골든 트라이앵글) 등 범죄 요소들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마약 지하경제, 경제·거버넌스까지 흔들 것
UNODC는 마약으로 발생하는 '지하경제'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경고했다. '마약으로 발생한 범죄 자금이 경제에 침투할 때 발생하는 위험과 자금세탁 문제'를 묻자 "경제적 건전성과 거버넌스, 법치주의에 대해 심각하고 장기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며 "세탁된 범죄 수익금은 공정한 시장 경쟁을 왜곡하고 부패를 조장하며 제도에 대한 신뢰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마약류 범죄는 상당 부분 가상자산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추적이 어려운 범죄 수익금은 간단한 세탁 과정을 거쳐 실물 경제에 유입되고 있다. UNODC는 "범죄 조직이 합법적인 기업이나 경제 부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라며 "결과적으로 범죄 네트워크가 불법 이익을 보존할 뿐 아니라 다시 범죄 활동에 재투자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된다"고 우려했다.
이런 측면에서 마약류 범죄 수사에서도 '금융 수사'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마약 밀매와 자금 세탁에 텔레그램·다크웹 등 익명 채널과 가상자산 거래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45차 아태 마약법집행기관장회의(HONLAP)에서도 금융 수사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전문가 패널은 "가장 효과적인 접근법은 금융 수사를 마약 사건의 일상적이고 통합적인 구성 요소로 다루는 것"이라며 "범죄 수익의 추적·동결·몰수·회수 등에 집중하고 법인 구조 뒤에 숨은 실제 소유주를 식별해야 하며, 신속한 국가 간 협력을 개선하는 게 핵심"이라고 역설했다.
개별 국가 대응 불가…초국가 협력 강화해야
국경을 넘나드는 마약 범죄는 이미 디지털을 기반으로 시장을 확장하며 유통망을 빠르게 분산시키고 있다. 단일 국가 차원의 수사는 한계에 직면했고, 국제 공조는 필수가 됐다.
UNODC는 "그 어떤 국가도 독자적으로 완전한 정보 지도(Intelligence Picture)를 그려낼 수 없다"며 "네트워크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UNODC는 초국가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으로 '마약 프로파일링(Drug Profiling)'을 제시했다. 단순히 마약류 사범을 추적하는 기술을 넘어, 압수된 마약의 '화학적 지문'을 분석하는 것이다. 국제 유통망과 제조 근거지를 추적하는 고도의 과학수사 기법이다.
전문가 패널은 "새로운 이니셔티브는 압수된 마약의 물리적·화학적 특성과 포장 형태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데 중점을 둔다"며 "법의학적 기반을 강화해 개별 사건 간 연관성을 파악하고 범죄 네트워크에 대항하는 합동작전을 용이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장희준 오지은 박호수 이지예 박재현 기자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