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藥국가]⑦"고통과 후회"…'10대 투약' 청년들의 참혹한 고백
■ 2장. 마약범죄, 10대를 노린다
'10대 시절' 투약 시작한 청년 5명 인터뷰
성범죄 등 2차·3차피해, 말단 드라퍼 되기도
"온몸에 벌레가…망치로 두들기듯 아파"
'한창 꿈을 꿔야 할 나이에 환각을 샀고, 내일을 설계해야 할 시간에 죽음을 마주했다.'
10대 시절 마약을 접한 청춘 5명이 아시아경제에 전한 참회다. 누군가는 동경하던 선배의 권유로, 누군가는 지독한 학업 스트레스 끝에 마약을 선택했다. 결과는 하나 같이 참혹했다. 빚더미와 환각, 장기가 마비되는 고통,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까지. 미래를 통째로 압류당한 이들이 뒤늦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전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위험한 호기심에 사로잡힌 이들에 대한 경고이자 절박한 호소다.
Case 1. 반복되는 투약, 영혼까지 내줬다
A씨(21)의 시간은 중학교 1학년, 그날에 멈춰 있다. 손에 꼽힐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지만, 따돌림은 소녀를 비뚤어지게 했다. 곁을 지켜준 친구에게 괴롭힘이 번졌다. 옥상에서 힘든 감정을 털어놓던 친구를 먼저 떠나보냈다. 남겨진 A씨는 무너진 마음을 달래려 술과 담배에 손을 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무렵, 덫 같은 메시지가 날아왔다. "찬○ 할래?"
A씨는 "부산에 사는 어른이었다"며 "마침 친구와 부산 여행이 계획돼 있어서 '간 김에 차가운 ○이란 것도 마셔 보자'라고 가볍게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숙소를 잡고 연락하니 곧 답이 왔다. 옆방으로 혼자 넘어오라고 했다. 방에 들어가니 테이블 위에 토니켓(지혈대)과 낯선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약이라는 걸 알아챘지만, 이미 남성이 소녀의 팔에 투약을 한 뒤였다.
"머리가 자동차 타이어로 밟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10시간에 걸친 '블랙아웃' 끝에 눈을 떴다. 남자는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샤워 가운을 입은 채였다. 일상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짜증이 터져 나왔고 망상까지 생겼다. 거실에 앉아 있는 하늘색 얼굴의 여자를 보고 발작까지 일으켰다. 갈망은 공포보다 강했다. 강렬한 기억에 사로잡힌 A씨는 남자를 다시 찾고야 말았다.
투약과 2차 피해가 반복됐다. 생기가 꺼져 가는 과정이었다. 하루 수차례 투약을 반복했다. 마약을 구하려 40대 판매책과 동거까지 했다. 돈이 떨어지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약을 구한다는 은어를 써 올렸다. 수많은 남성으로부터 메시지가 왔고 약물에 종속된 관계가 이어졌다. 환각에 환후까지 생겼다. 눈을 감았다 뜨면 옆 사람이 바뀌었고 갑자기 생선 썩은 내가 올라왔다.
그는 민간 재활시설에서 위태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A씨는 "부모님을 계속 걱정시키고 있다는 게 가장 힘들다"며 "시간은 한참 흘렀는데 해놓은 게 없어 죄책감이 크다"고 털어놨다.
Case 2. 벌레 수만 마리 기어 다니는 고통
래퍼를 꿈꿨던 B씨(25)는 열아홉 살 꿈에 그리던 작업실에서 '악마'를 만났다. 평소 동경하던 오빠들이 작업실로 그를 부른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갔다. 음악 대신 B씨를 기다린 건 은박지와 빨대, 낯선 약물. 펜타닐이었다. '다 널 위한 거야'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갔다.
나른했다. 불안감을 일으키던 공황도 사라졌다. 딱 10분이었다. 그 뒤에는 온몸이 간지럽고 구토가 시작됐다. B씨는 "피부 겉이 아니라 안쪽 근육이 간지러워 미칠 것 같았다"며 "팔과 다리, 가슴 쪽으로 그 느낌이 번지는데 정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소름 끼쳤다"고 설명했다.
비극은 치밀하게 설계됐다. B씨는 "첫 투약 이후 후유증인 줄 모르고 '몸이 왜 이렇게 힘들지'하고 있었는데, 딱 일주일째 되는 날 정말 악마가 보낸 것처럼 사람이 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호감을 표했던 유명 래퍼였다. 선심을 쓰듯이 마약을 내줬다. B씨가 중독되기 시작하자 본색을 드러냈다. 후배들을 중독시킨 뒤 약값을 뜯어내는 포식자였다. B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병원에서 비급여로 펜타닐을 처방받는 값의 7~10배를 받아갔다"고 말했다.
몸은 빠르게 망가졌다. 마취제 성분으로 구성된 약물 탓에 실제로 장기가 마비됐다. 일주일 넘게 화장실을 못 가는 건 기본이었다. 위경련과 장폐색까지 반복됐다. 마약 기운이 떨어지면 근육이 조여드는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마약을 해야 겨우 밥 한술 뜰 수 있는 상태가 됐다.
B씨는 "마약을 멋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일부 음악 하는 사람들의 문화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의지만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신앙을 붙잡고 3년 넘게 단약을 이어오고 있다. 다른 젊음들이 자신처럼 '악마가 보낸 사람'에게 속지 않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Case 3. "마약 멈추면 망치로 때리는 듯 괴로워"
홀로서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 열일곱 살. C씨(24)는 가수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상경했다. 부모의 울타리를 떠난 자취 생활은 자유로웠다. 그 빈틈으로 파멸이 파고들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대마에 손을 댔다. 음악을 위해 자퇴까지 했지만 C씨의 꿈은 연기처럼 흐릿해졌다. 그는 "대마 다음은 진통제류 마약을 접했다"며 "그냥 삼키다가 주변에서 하는 투약 방식을 보고 따라 했다"고 했다. 환각이 너무 강했던 LSD는 지금 떠올려도 두려울 정도다.
더 공포스러웠던 건 금단 증상이었다. C씨는 "진통제류 마약은 금단 현상이 엄청 심하다"며 "온몸을 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경험하는 순간 '마약을 절대 하면 안 되는구나' 깨닫지만, 이미 투약해버린 뒤라는 게 문제"라며 "약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온몸에 고통이 멈추지 않으니 그게 무서워서라도 다시 손을 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가족의 헌신도 소용없었다. 어머니는 위암을 앓았다. 딸을 살리기 위해 온몸으로 매달렸다. 직접 재활 프로그램까지 수료했다. 딸이 구속됐을 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면회를 오갔다. C씨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도 마약을 떠올렸다. 병원 수십 곳을 돌았다. 어린 동생의 명의까지 도용했다. C씨는 "집행유예를 받고 동생 이름으로 약을 탔다"며 "정말 못 할 짓을 했다"고 털어놨다.
마약을 갈구하는 만큼 스스로를 혐오했다. 가족의 헌신은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자꾸만 위험한 생각에 빠졌다. 결국 가족들은 외래진료를 가자고 속여 폐쇄병동에 그를 강제 입원시켰다. 그렇게 1년을 꼬박 갇혀 지냈다. C씨는 "약을 하면 좋을 것 같겠지만, 끝없는 고통이 찾아온다"며 "건강, 감정, 인간관계까지 모두 무너지고 인생의 밑바닥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Case 4. '위험한 랜덤박스' 약 찾아 헤맨 소년
D군(18)은 손꼽히는 우등생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마주한 세상은 너무 치열했다. 엉망이 된 성적표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옆 학교 선배가 합성대마를 건넸다. 늦은 새벽 10대 소년들은 지하주차장에 모여 선을 넘었다.
한순간의 일탈로 그칠 줄 알았다. 1학기를 마친 D군은 정시를 목표로 자퇴를 결심했다. 학교를 떠난 게 실수였을까. 열심히 했던 공부도 점점 손에 잡히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약에 빠지기 시작했다. 마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 도박에 손을 대는 지경에 이르렀다.
돈이 떨어지면 길바닥으로 나섰다. 텔레그램에서 마약을 구매하면 '던지기' 해줄 만한 은닉 장소를 찾아다녔다. 서울·인천·수원 등 먼 지역까지 골목길을 뒤졌다. D군은 "약을 찾으면 테이프로 감싸져 있는데 뭐가 나올지 모른다"며 "처음에는 합성대마만 했었는데, 랜덤박스처럼 필로폰도 나오고 케타민도 나오고 하니 '이것도 해볼까' 하면서 다 해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LSD를 처음 투약했을 땐 주변이 사막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음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샀다가 '사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들려 상점에서 뛰쳐나왔다. 필로폰은 더 끔찍했다. 투약 직후 쓰러지며 머리를 부딪혔다. 기억상실까지 겪었다. 닷새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악마의 손길은 끈질겼다. D군은 "단약 중 텔레그램 채널에 들어갔더니 딜러들이 연예인 사진을 올리면서 퀴즈를 냈다"며 "이런 식으로 당첨되면 공짜로 약이 생기니 다시 하게 됐다"고 했다. 친구도 그를 늪으로 끌어당겼다. 단약 중 만난 친구가 주머니에서 케타민을 꺼낸 것이다. D군은 "약을 하면 특별해 보일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한심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Case 5. 가족 신상 담보로…'말단 세포' 된 10대
동경과 호기심, 혹은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핑계는 10대를 거대한 마약 유통망의 말단 세포로 만들기도 했다. E군(19)은 입시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평범한 수험생이었다. 지금은 드라퍼(운반책)가 됐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만난 그는 마약을 떠올리기엔 너무 앳된 모습이었다.
처음 그에게 마약을 건넨 이는 학원 친구였다. 지독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일탈로 여겼다. 그러나 한 카트리지에 수십만 원 하는 액상대마 값을 감당하기에 소년의 주머니는 너무 가벼웠다. E군은 "처음 약을 줬던 친구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있다면서 텔레그램 계정을 알려줬다"고 했다. 노예 계약과 다름없었다. '좌표 딜러'라고 불리는 판매책은 E군에게 주민등록증과 가족관계증명서, 가족들의 연락처를 요구했다. 담보로 보증금 200만원까지 뜯어갔다.
유통 과정은 치밀했다. E군은 상선이 알려준 좌표에서 검은 비닐에 쌓인 마약 묶음을 수거했다. 대량으로 포장된 약을 '뭉치' 혹은 '통'이라고 불렀다. 약을 가져온 뒤 판매책이 시킨 대로 작은 지퍼백에 나눠 담았다. 그는 "아파트 배전함이나 건물 외벽 실외기처럼 일상적인 장소에서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한 위치에 알아서 숨기면 된다"고 설명했다. 어떤 마약이었는지 묻자 "하얀 가루였는데 소금이라고 불렀다"며 "정확히 모르겠지만 케타민 같았다"고 답했다.
은닉을 마치면 장소를 캡처한 지도와 인증샷을 보냈다. 구매자의 수령 확인을 거쳐 건당 수만 원에 불과한 수수료가 들어왔다. 그는 "하루에 많게는 20건까지 해봤는데 매일 그렇게 할 수는 없다"며 "약을 하는 걸 들키면 잘리기 때문에 딜러에겐 투약 사실을 숨긴다"고 말했다.
E군은 내내 극도로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형사가 날 쫓아오고 있다"거나 숨을 참았다가 몰아쉬길 반복했다. 그럼에도 투약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아무 생각이 안 들어서"라고 했다. 후드를 뒤집어쓴 소년의 뒷모습은 거대한 톱니바퀴 속 소모품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였다.
특별취재팀|장희준 오지은 박호수 이지예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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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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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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