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20일 연금개혁 합의 두고 재의요구 봇물
극단적 정치대결에서 이뤄낸 값진 합의
대화를 통한 정치기능 회복 '물꼬' 열어야
여야가 합의한 연금개혁을 두고서 정치권 내 반발이 거세다. 미래세대를 착취한 야합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일부 정치인은 정부와 여야가 함께 논의한 이번 합의를 두고서,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를 통과한 여야 연금개혁안은 정말로 기성정치권 담합에 불과할까.
"의장이 되고 여야와 함께 서명하는 일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지난 20일 연금개혁에 합의한 뒤 우원식 국회의장은 입 바깥으로 퍼지는 미소를 누른 채 합의에 이른 소회를 담담히 말했다.
22대 국회 들어 주요한 의사결정에 있어 여야가 합의문 한 장 쓰지 못한 채 극한 대결 양상을 보였는데, 최악의 정치 위기 국면에서 연금개혁이라는 난제에 돌파구를 찾았으니 만감이 교차했을 수밖에 없다.
12·3 비상계엄 이후 정가는 혼돈의 장이었다.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여야의 극한 대치는 정치적 내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러한 위기 국면에서 정치권이 ‘코끼리 냉장고 넣기’에 비유될 정도로 난제로 꼽혔던 연금 문제를 풀어낸 것은 예측 밖의 일이었다. 연금 제도를 손본 것은 18년 만이고 내는 돈에 해당하는 보험료율 인상을 기준으로 하면 27년 만이다.
국민연금법에는 정부가 5년마다 국민연금 운영 전반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제 국가에서 모든 정부마다 연금이 지속할 수 있도록 상황을 분석한 뒤 책임감을 갖고 개혁을 추진하라는 취지다. 역대 정부에서 개혁에 실패한 것은, 어떻게 개혁해도 정치적으로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는 사안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월급쟁이와 자영업자 소득에서 떼가는 돈을 늘리는 보험료율 인상이나 약속된 연금을 깎는 길 외에는 본질적 개혁의 방법이 없다. 국민 지갑을 가볍게 만드는 개혁이 환영받을 리 만무하다.
개혁이 어려운 무수히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돌파구를 찾은 것은 정치권 소명 의식과 함께 대화라는 기존의 정치 문법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연금개혁 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일이라면 비판을 감수해도 결단해야 한다는 신조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소속의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이례적으로 의장석이 아닌 발언대까지 올라 연금개혁에 찬성해줄 것을 호소했다.
향후 구조개혁은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다뤄진다. 모수개혁으로 시간과 재정을 다소 벌어놓았다. 이제는 세대 간 형평성이나 사회 통합, 연금 지속성을 모색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는 것은 모수개혁에 그친 이번 개혁 이후 다시 정치권이 근본적 개혁 문제를 묵혀둘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이미 정부와 정치권이 합의한 사안을 무위로 돌리고 다시 논의를 시작하자는 주장은 무책임해 보인다. 세대 간 이해관계를 이용하려는 정치 갈라치기로 비칠 수 있다. 더욱 진정한 책임을 지는 방법은 정치의 문법으로, 다음 구조개혁을 위한 결심을 끌어내는 일이다.
이번 연금개혁 합의는 정치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줬다. 첫걸음을 내딛는 일은 늘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한 걸음이 내디뎌졌다. 중심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연금개혁도 정치의 회복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나주석 정치부 차장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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