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 공백이 1년 가까이 이어지는 데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의대 증원에 앞서 의사들의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의료 사법(司法)' 문제 해결이 먼저라는 의견이 나온다. 의료사고로 의사에게 징역형이 선고되거나 의료사고 무과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 경향이 나타나면서 의사들이 외과나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를 떠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를 형사적으로 과도하게 처벌할 경우 필수의료 분야 위기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높다.
법률신문은 창간 74주년을 맞아 의료사고를 둘러싼 법적 판단에 대해 현재 대한의학회 부회장이자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 원장을 맡고 있는 이우용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부터 이어진 의대 증원을 둘러싼 문제로 연일 의료계에 이슈가 이어지고 있다. 갈등을 타개할 묘안이 있을까.
타개할 방안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끌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의사 중 서로 양보하든지 한 군데가 피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타협점이 전혀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아프지 말라"고 말씀드린다. 학생들도 의료계 원로들의 이야기를 들을 상황이 아니고 이야기를 하려 해도 듣지 않는다. 정부도 완강하다. 누군가가 양보하고 서로 타협해서 한 발씩 한 발씩 가까워져야 하는데 쉽지 않다. 결국 모든 피해는 국민들에게 가고 있다.
내년 2월까지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다면 의료 현장 상황은 올해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다. 내년 3월 초가 새 전공의가 들어오는 시즌이다. 큰 병원들은 교수가 있고 아래에 전임의(펠로), 그 아래에 전공의(인턴·레지던트)가 있다.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 후 전임의들이 현장에 남아 의료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내년 초 근무 기간이 끝남에 따라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날 것이다. 내년에 새로 들어오는 전임의는 올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장 인력 공백이 심화할 것이 자명하다.
10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보나. 갈등에 대해 '의사들의 이익 추구'라고 보는 비판적 시각도 있는데.
문제의 본질은 전문가 집단과 논의 없이 실현 가능성 없는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 카드를 좋은 뜻으로 꺼냈을지 모르겠지만 문제 해결 순서가 잘못됐다. 문제가 '지역의료 및 필수과(외과·응급의학과·소아과 등) 활성화'였다면 지역의료와 필수과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먼저 만들고, '그래도 인력이 모자라니 늘리겠다'며 의대 증원을 추진해야 했다. 그런데 순서가 바뀌었다. 의료계에서 수십 년 전부터 필수과 활성화 방안을 주장했지만,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다가 갑자기 시행한다고 하니 더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의대 정원이 2027명이던 1998년만 해도 279명이 외과 전문의를 택했다. 현재의 의대 정원은 3100명으로 전체 정원이 1000명 늘었다. 하지만 요즘 외과를 택하는 졸업생은 130명 안팎이다. 의대 전체 인원은 늘었는데 필수과에 오려는 인원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필수의료를 하려 하는 사람 중에 큰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돈 못 벌어도 좋으니 중한 환자를 살린다는 자부심으로 필수과에 오는 거다. 그런데 필수과는 '힘은 힘대로 들고 돈 안 되는 과'가 되어버렸다. 오죽했으면 '필수과=낙수과'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길 정도다.
외과학회 데이터를 보면, 외과에서 전문의를 따고도 40%가 피부, 성형 진료를 하거나 요양병원 의사로 취업한다. 외과, 소아과 의사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이들이 다른 과 일을 하는 게 문제다. 의정 갈등을 두고 의사들에게 '돈 때문에 의사가 됐냐'라고 말하는데, 필수과 의사들은 돈 벌려고 의사가 된 것이 아닐뿐더러 원래 필수과는 다른 과에 비해 돈을 못 번다.
필수과가 다른 과에 비해 급여가 아주 적은가.
대학병원은 필수과 의사나 비(非)필수과 의사나 비슷하게 급여를 받는다. 우리나라 병원은 의사가 중환자를 많이 보면 볼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다. 그러니 필수과 의사도 그만큼 대우를 못 받는다. 정부가 필수과 수가를 계속 억제하고 비필수과 비급여 진료는 방임했다. 필수과인 외과, 산부인과는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다. 응급수술과 중환자가 많은 필수과는 비필수과에 비해 두세 배는 더 일을 많이 하는데 수입은 3분의 1도 안 된다. 물론 일반 근로자보다 필수과 의사들의 급여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과 의사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이다.
'이익 추구'라는 지적이 있는데, 의료 현장이나 대학을 떠난 사람들은 전공의와 학생들이다. 이들이 나중에 의사를 할지, 전공의를 할지, 피부과로 갈지 필수과로 갈지 아직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돈 때문에 나갔다고 비난하는 것이 적절한 비난인지 의문이다. 명확한 건 학생들이나 전공의는 당장의 이익과 관계가 거의 없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일선 의사들은 의대증원 문제보다 심각한 것으로 '의료 사법' 문제를 꼽는다. 법원 판단의 흐름이 바뀌면서 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이 의사에게 넘어간 것이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이 큰 필수의료 분야(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의 인력 부족 현상 심화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의사에게 입증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오긴 했으나 아직은 환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라고 봐야 한다. 의료사법의 가장 큰 문제는 '형사처벌로 인한 진료 위축'이다. 의사들이 형사처벌이 두려워 방어적으로 진료를 하게 되고,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의료 사고가 민사보다 형사 사건으로 번졌을 때 타격이 크다. 환자를 일부러 죽이는 의사가 어디 있겠나. 낫지 않았다고, 죽을 사람 못 살렸다고 의사를 처벌하는 판결은 문제가 있다. 문제는 이런 의료 분쟁이 중환자가 많은 필수과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수술을 해도 어떤 사람은 합병증이 오거나 몸 상태가 나빠진다. 의사들은 신(神)이 아니다. 그러니 다들 의료분쟁에 휘말릴 바에 형사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낮은 비필수과로 가겠다는 것이다.
잠도 못 자면서 일했는데, 까딱 잘못하면 처벌받고. 이러면 의사를 왜 하려고 하겠나. 예전엔 '사람 살리는 보람으로 한다'고 했지만 요새 젊은 의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의사를 계속해 보라'고 권유할 명분이 없다. 특히 필수과 기피 현상의 원인으로 돈 문제, 낮은 수가 문제도 있지만 의료 소송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 예를 들어 분만 중 사고가 나면 10억, 20억 원씩 배상해 줘야 한다. 10년 넘게 일한 돈을 소송으로 다 날리게 되는 것이다.
의사들이 소송을 진행하고 수사를 받으면 그 트라우마가 몇 년은 지속된다. 결국 방어적으로 진료를 하게 되는데, 그 손해는 환자들이 지게 된다. 나는 암 수술을 많이 하는데, 예를 들어 어느 환자에게 큰 암이 재발했다고 치자. 종양이 발견됐는데 이걸 떼면 완치할 수 있다. 근데 성공 가능성이 20%다. 그럼 시도해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소송이 무서워서 뗄 수 없지 않을까. 수술을 못하니 방사선, 항암 치료를 할 수밖에 없다. 의사가 최상·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형사처벌 문제는 의사들에게도, 나을 수 있는 환자들에게도, 나아가 국가 전체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법원에서도 판단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정말 고의적인 게 아니라면 의사를 처벌하지 않거나 특례법을 제정해 면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필수의료를 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년 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나조차 어려운 수술이 오면 겁이 나는데, 젊은 친구들은 어떻겠나.
대표적인 판결이 이화여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다. 결국 대법원에서 의료진 무죄가 확정됐지만 이분들은 소송이 진행되는 3년간 아무 일도 못 했다. 이 사건 이후 소아과 지원이 대폭 줄었다.
우리나라는 유례없이 의사들을 형사처벌하는 나라다. 일례로, 영국에서 2013~2018년 의사가 중과실 살인죄로 기소돼 유죄 판결받은 사례는 4건이지만 우리나라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건이 670건이다. 영국 의사 수는 우리나라보다 2배가량 많다. 독일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의사에 대한 형사 처벌은 단 6건으로, 1년에 1건꼴이다.
사법부 판결이 의사들의 진료와 의료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는 점도 법원에서 고려해 주면 좋겠다. 의료 판결이 나오면 의사들이 그 판례를 지켜가며 진료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맹장수술을 하러 온 환자에게 혈액검사를 실시하고 수술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사고가 생겨 법원에서 'CT를 찍어보고 수술했으면 더 정확했을 것'이라며 의사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 의사들은 굳이 CT를 찍지 않아도 되는 맹장환자에게도 불필요하게 CT 촬영을 해야 한다. 혹시나 나중에 CT 촬영을 안 했다고 처벌받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맹장수술을 10만 건 한다고 치면, 그 판결 하나로 인해 CT 비용으로 수십억, 수백억원의 비용이 쓰이게 되는 셈이다. 이런 판결 하나하나가 의료보험 재정 수조 원에 영향을 미쳐 정작 필요한 곳에 적절히 돈을 쓰지 못하는 문제까지 초래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의료 사건을 다룰 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고려해야 할까.
환자를 살리려고 했던 사람이 처벌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누가 봐도 의사에게 확실한 과실이 있거나 고의로 한 게 아니라면 면책해 줄 필요가 있다. 의협에서 정책 연구할 때 제안한 게 있다. 자동차 책임보험처럼, 의료 형사사건에서 의사들을 5대 중과실(대리수술, 음주수술 등) 사안을 제외하고 면책해 주는 보험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대신 누가 봐도 문제 되는 과실을 저지르거나 고의로 한 사안은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 또 실수와 잘못이 반복되는 의사는 동료 의사들이 징계를 통해 자율적으로 면허를 중지시켜야 한다. 외과의사가 갑상선 수술하며 갑자기 배 열어서 다른데 갑자기 잘랐다든지, 수술과 관계 없는 엉뚱한 부위의 대동맥을 터뜨려서 환자 죽이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른다든지. 이런 상황을 제외하고 애매한 건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다. 중과실 외에는 형사처벌을 면제해 줘야 필수과 의사들이 어려운 환자도 볼 수 있다.
미국 일부 주는 의사가 환자에게 공감하는 과정에서 밝힌 유감, 사과 등의 표현을 의료 소송 재판에서 의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증거로 채택하지 못하게 하는 '사과법(Apology Law)'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의사가 법적인 불이익 없이 환자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다. 한국도 2018년 도입이 논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무산됐는데, 이 같은 법 제정이 한국에도 필요할까.
사과법 취지는 좋은데 제대로 이행이 될지는 모르겠다. "참으로 유감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게 우리나라에선 거꾸로 이용될 것 같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그렇게 사과하면 의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의사가 도의적으로 사과할 수 있지만 오히려 처벌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어 사과를 못 하는 것이다. 사과법을 도입할 경우 이론적으론 소송으로 가는 확률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서양처럼 될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전국 응급실에서 이뤄지는 처치의 60%가 외과의 담당이다. 외과가 무너지면 전국 응급실의 60%가 무너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한국 의료계의 응급실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나.
응급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응급실에 와서 응급 처치 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입원해야 하는데, 다들 그 뒤단계는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의 가장 큰 문제는, 응급실에 의사가 없는 게 아니라 필수과 의사들이 줄어들어 '응급실 이후의 진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응급실 문제에서 응급실'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응급의학과 의사들 월급만 올라갔다. 응급실 과밀화 문제도 응급실 치료 후 옮겨갈 병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미흡해 계속 응급실에 머물고 있어야만 해 생기는 문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응급실 과밀도가 올라갈 경우 병원이 페널티를 받는다. 이 때문에 대형병원들이 과밀화를 해결하려고 잠시 응급실을 폐쇄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과밀화가 왜 발생하는지 해결하려 하지 않고 페널티만 주니까 어쩔 수 없지 않겠나. 응급실은 게이트고, 실제 처치는 뒤에서 하는 건데 그걸 간과하고 앞에 응급실만 문제라고 생각한다.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감정의 공정성 등에 대해 문제가 제기될 때가 있다. 이에 대법원이 신속한 감정 절차 진행과 감정료 현실화를 위해 의료감정 컨트롤타워를 추진하고 있다. 의료감정이 지연되거나 결과의 신뢰성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원이 어떤 부분에서 보완하면 좋을까.
최근 대한의협 의료감정원 차원에서 김정중 서울중앙지방법원장과도 의료 감정과 관련해 간담회를 가졌다. 지금 의료감정의 문제는 감정 결과가 들쑥날쑥하고 감정 기간이 평균 6개월가량으로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일단 감정할 의사 찾기가 힘들고 자료나 기록을 모두 종이에 수기(手記) '아날로그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료가 부족하면 계속 다시 보내고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해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 의료기록을 저장하고 법원에서도 열람할 수 있도록 전자시스템을 만드는 방안을 고려하면 어떨까 싶다. 감정을 맡을 의사가 해당 프로그램에 접속해 로그인하면 그와 관련된 자료를 전산으로 볼 수 있도록 하고, 그 프로그램 내에서 감정 내용을 작성해 올릴 수 있도록 하면 지연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법원, 의협, 정부가 함께 '감정 컨트롤 타워'를 세우고 의료 감정인 풀을 늘려야 한다. 국가에서 감정인을 교육하고 자격증을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 외국에선 정년 퇴임한 의사들에게 명예직 차원에서 감정인으로 일하도록 기회를 주기도 하는데, 우리도 이런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밖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법원에서 의사와 환자들은 법전과 책임 약관 문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환자들은 살아서 숨 쉬는 사람들이다. 내가 전공의들에게 늘 하는 말이 '당신이 10분 전 만난 환자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환자'라는 말이다. 10분 전에는 살아있었지만, 10분 후에는 살아있을지, 상태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해 결과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중간 과정의 상황도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다. 판사 한 명 한 명이 한 판결이 의료계와 사회에 미칠 파장을 생각주면 좋겠다. 의사에게 억울한 판결은 나중에 많은 환자들도 억울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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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연, 홍윤지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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