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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타그램]10년 전 오늘, 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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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어버이날, 나는 진도에 있었다.

아침부터 바람이 불었고 방파제에는 서로에게 닿지 못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의 탄식이 부딪히고 있었다. 잃어버린 부모를 찾는 부르짖음 같은 카네이션과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를 부르는 부모의 피눈물 같은 빨간 포장 초코파이가 파도에 떠다녔다. 스님의 독경 소리는 제단 지붕의 천막 펄럭이는 소리에 덮였다. 제단에 놓인 카네이션 화분에는 ‘엄마 미안해, 어디 계세요’라고 쓴 노랑 리본이 바다를 향해 흔들렸다.


10년 전 5월 8일, 진도 팽목항 방파제 옆에 카네이션과 초코파이와 국화꽃이 파도에 떠다니고 있었다. ⓒ허영한

10년 전 5월 8일, 진도 팽목항 방파제 옆에 카네이션과 초코파이와 국화꽃이 파도에 떠다니고 있었다. ⓒ허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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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간 속에 오늘이 있을 리 없다. 사람들은 잊을 수 없는 날에 이름 붙이고, 그것이 ‘오늘’과 만나면 여전히 손닿는 현재처럼 각별히 느끼기도 한다. 그때도 나는 사진기자였고, 타인의 불행이 우리의 일이 되는 경우는 많다. 그날 찍었던 사진들을 10년 만에 열어봤다.

스님의 독경 소리는 바람 소리에 덮여 들리지 않았다.

스님의 독경 소리는 바람 소리에 덮여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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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난 지 3주쯤 지나니 소음은 가라앉았고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현장을 떠났고 사진 찍는 기자들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바람에 날려 제단에서 떨어져 흩어진 과자를 후배 사진기자들이 주워 담아 다시 올렸다. 먼저 온 어느 기자는 처음의 혼란 와중에 사진기자들이 욕먹고 폭행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회적 혼란 앞에서는 언론이 싸잡아 욕먹기 쉽고, 맨 앞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사진기자들이 첫 번째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제단에 놓인 카네이션 화분

제단에 놓인 카네이션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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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모임’의 사람들이 슬픔을 함께하겠다는 쪽지를 써 붙인 판을 들고 항구를 방문했다. 다른 단체 방문객들은 바닷가에 노란 종이배를 띄운 뒤 앉아 오래 기도하고 갔다. 방파제 난간의 노랑 리본이 바람에 날려 그 위에 써 놓은 글씨가 소리가 되어 들리는 듯했다. ‘어서 돌아와 카네이션 달아 줘야지’. 다른 리본에는 ‘돌이킬 수만’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그날은 발견된 실종자가 없었다.


방파제에 달린 연등과 가족을 찾는 심정이 적힌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방파제에 달린 연등과 가족을 찾는 심정이 적힌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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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난 지금, 유족들이 지난 시간을 대하는 방식은 성숙했다. 이제 슬픔보다는 안전한 미래를 말한다. 나는 그때 경황없이 찍어 놓았던 사진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이야기를 보기도 한다. 감정도 사진도 세월이 익히는 것이 있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많다. 정략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말은 10년 넘게 현재형으로 반복된다. 안전한 나라는 요원하고, 카메라 든 기자들은 요즘도 ‘거기 있다’는 이유로 종종 욕을 먹는다. 욕의 양상이 궁금하면 여러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정치인의 재판일 서울중앙지법으로 가보시길 권한다.

어버이날을 맞아 항구를 방문한 사람들

어버이날을 맞아 항구를 방문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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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

바닷가에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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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과 노랑 리본

카네이션과 노랑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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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들이 바람에 날려 제단에서 떨어진 과자를 주워 담고 있다.

사진기자들이 바람에 날려 제단에서 떨어진 과자를 주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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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찰관이 바닷가 제단을 지키고 있다.

한 경찰관이 바닷가 제단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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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8일 정오 무렵 진도 팽목항 방파제

2014년 5월 8일 정오 무렵 진도 팽목항 방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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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한 사진팀 부장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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