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엔 무궁화, 산속엔 거대한 배터리...한수원의 또 다른 에너지 실험 [르포]
태극기·무궁화 품은 47.2MW 임하댐 수상태양광
주민 4000명 참여한 '재생에너지 상생 모델' 눈길
예천 산속 720m 지하엔 거대한 물 배터리
3분 만에 전력 공급하는 양수발전, 계통 안정화 핵심으로
경북 북동부 산길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전혀 다른 두 개의 발전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안동 임하댐 수면 위에는 태양빛을 머금은 거대한 태극기와 무궁화가 떠 있고, 예천 깊은 산속 지하에는 물의 힘으로 전력망을 지키는 거대한 발전기가 숨 쉬고 있다. 원자력발전 공기업으로 알려진 한국수력원자력이 사실은 태양광과 양수발전까지 아우르며 대한민국 전력망 전체를 떠받치고 있었다.
지난 15일 경북 안동 임하댐 수상태양광 단지. 굽이진 산길 끝에 나타난 호수 위에는 검푸른 태양광 모듈이 거대한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 가까이서 바라본 시설은 단순한 발전소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에 가까웠다. 수면 위 태양광 모듈은 태극기와 무궁화 형상으로 배치돼, 친환경 에너지 시설에 대한민국 상징성을 함께 담아냈다.
임하댐 수상태양광은 총 설비용량 47.2MW 규모의 국내 최대 수준 수상태양광 단지다. 안동시 임하면·임동면 일원 52만㎡ 수면에 조성됐으며, 연간 약 6만1000MWh의 전력을 생산한다. 약 2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수상태양광은 육상태양광과 달리 산지 훼손이 거의 없다. 수면 냉각 효과 덕분에 발전 효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임하댐 사업은 기존 수력발전소 송전망을 그대로 활용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낮에는 태양광 전기를, 밤에는 수력발전 전기를 같은 송전망으로 보내는 '교차발전' 구조다. 전국 곳곳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이 송전망 부족 문제로 멈춰 서는 상황과 비교하면 상당히 효율적인 모델이다.
이 발전소의 또 다른 특징은 주민 참여다.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주도하고, 한수원과 한국수자원공사가 공동 시행한 국내 첫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집적화단지다. 반경 1㎞ 이내 33개 마을 주민 4000여명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향후 20년간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약 222억원 규모다. 발전소가 단순 전력 생산시설을 넘어 지역 수익 모델 역할까지 맡고 있는 셈이다.
같은날 찾은 예천양수발전소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산 정상 부근 상부댐에서 시작된 물길은 지하 깊숙한 발전소로 이어졌다. 버스를 타고 긴 터널 아래로 내려가자 거대한 발전기 두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은 마치 거대한 잠수함 내부를 연상케 했다.
양수발전은 남는 전기로 물을 위로 끌어올렸다가, 전력이 필요할 때 다시 떨어뜨려 전기를 생산한다. 전기를 물의 위치에너지 형태로 저장하는 셈이다.
예천양수발전소는 2011년 준공된 국내 최신 양수발전소로, 400MW급 발전기 2기를 갖춘 총 800MW 규모다. 국내 전체 양수 설비용량의 약 12%를 차지한다.
경북 예천양수발전소 상부댐 전경. 전력이 남는 시간에는 하부댐의 물을 끌어올려 저장하고,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 물을 떨어뜨려 전기를 생산하는 ‘거대한 물 배터리’ 역할을 한다. 한수원.
원본보기 아이콘최근 들어 양수발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날수록 전력 생산량 변동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전력망은 항상 일정한 주파수를 유지해야 하는데, 양수발전은 수 분 내 즉각 출력 조정이 가능해 전력계통 안정화 역할을 수행한다.
현장 관계자는 "양수발전소는 가장 안전하고 거대한 대용량 배터리"라며 "전력 수급 상황이 급변할 때 가장 먼저 투입되는 긴급 구조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양수발전은 블랙아웃 상황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는 발전원이기도 하다. 상부댐 물로 전기를 생산한 뒤 이 전기로 다른 대형 발전소를 재가동시키는 '시동 전원' 역할까지 맡는다. 원전이 안정적으로 기저전력을 공급한다면, 양수는 그 사이사이 흔들리는 전력망 균형을 붙잡는 셈이다.
한수원은 현재 원전뿐 아니라 전국 7개 양수발전소, 총 16기 양수 설비를 운영 중이다. 설비용량은 4700MW 규모다. 여기에 영동·홍천·포천 등 신규 양수발전소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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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기업이라는 이미지 뒤에서, 한수원은 이미 수력과 태양광, 양수까지 연결된 복합 에너지 기업으로 역할을 넓혀가고 있었다. 안동의 물 위 태양광과 예천 산속 물의 배터리는 그 변화의 단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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