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법의 언어도 시처럼 절제되고 섬세해야
한 매장에서 주인이 지갑을 주웠다. 옆에 있던 손님에게 지갑 주인이냐고 물었고 손님은 자기 것이 맞다며 지갑을 가져갔다. 하지만 지갑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법원은 처음 지갑을 가져간 피고인에게 절도죄를 적용해 벌금 50만원을 판결했다. 피고는 지갑이 자기 것인줄 알았고 따라서 절도는 아니라며 항소했다. 2심은 절도 대신 사기죄를 적용하는 대신 '유죄, 벌금 50만원' 결론을 그대로 유지했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는 잘못의 유무를 넘어 피고인에게 적용할 죄명이 절도인지 사기인지 끝까지 따져야 하는 사람들이 판사다.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에서 글쓴이는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 어떤 잘못인지를 집요하게, 끝까지 추궁하는 별종이 바로 판사라고 설명한다. 책에서 글쓴이는 판사가 어떤 사람이며, 어떠해야 하는 사람들인지, 또 그들이 작성하는 판결문은 어떤 글인지 설명한다. 법과 판사, 판결에 대한 에세이 같은 글 스물여덟 편이 실렸다. 모든 글은 실제 판결문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글쓴이는 야구 경기를 설명하는 해설가처럼 해당 판결이 나온 이유, 해당 판결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 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나는 "판사의 말이 곧 법이다"라는 말을 오히려 거꾸로 새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법이 곧 판사의 말이다." 판사는 사건에 적용될 법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그 법이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풀어 설명하는 것을 그 역할로 할 뿐이다. 판사가 하는 일은 '법'에 근거하며, 따라서 '법'을 벗어날 수 없다. 법이란 '판사의 말뚝'과 같다. 판사가 '제아무리 멀리 벗어나려 해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만큼만 가능한 것이다.(20쪽, 법이라는 말뚝)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에는 일관성이 있고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야구 경기를 할 때 스트라이크 존이 너무 좁거나 넓다는 비판이 있더라도 어제의 스트라이크 존과 오늘의 스트라이크 존이 다르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규칙이어야만 질서가 생기고, 질서가 있어야만 이를 준수하는 사람이 안정될 수 있다. 이를 법학에서는 '법적 안정성'이라 한다. 판사는 법적 안정성을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여긴다. (중략) 그렇다고 판사가 법적 안정성만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과감한 결단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병역법에서는 종교든 도덕이든 철학이든 어떤 양심상 이유에 따른 입영거부자에 대해 일률적으로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해 왔다(그래야 그가 현역이 아니라 전시근로역으로 편입된다). 대법원에서는 법원의 이러한 결정이 정당하다고 2004년과 2007년에 거듭 확인했다. 하지만 2018년에 드디어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입영 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결단했다(대법원 2018. 11. 1 선고 2016도10912 전원합의체 판결). (중략) 이 판결에서 반대의견도 다수의견의 '법적 안정성이라는 중대한 사법적 가치를 손상'했다며 비판했다(대법원 2018. 11. 1 선고 2016도10912 전원합의체 판결 중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이기택의 반대의견). 하지만 다수의견은 이러한 변화가 '양심의 자유'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지키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52~57쪽, 안정이라는 그림자)
"나에게 사실을 달라. 그러면 네게 법을 주겠다"라는 법언이 있다. 누군가는 이는 사실만 알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법률가의 자신감으로 읽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법언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제발 진실을 알려주세요"라는 간곡한 부탁, "제3자인 우리는 진실을 알기 어렵거든요"라는 솔직한 현실 인식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법정 영화에서는 이러한 진실 찾기를 주되 테마로 다룬다. 진실은 미리 관객에게 주어지므로, 진실이 무엇이냐보다는 그 진실에 다가서는 스킬이 관객의 흥미를 끈다. 내겐 오래된 법정 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an, 1992)이 바로 그런 영화였다.(59~60쪽, 어렵고도 마땅한 다짐)
시는 극도로 절제된 언어적 표현의 산물이다. 좋은 시를 짓기 위해서는 말을 벼릴 수 있어야 한다. 가도와 한유가 시를 퇴고한 것처럼. 말을 절제하며 정확하게 쓰려고 한다는 점에서 시와 법은 닮았다. 법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실 사이에서 작동한다. 이 첨예한 대립적 현실을 언어로 담아내야 하기에 법 역시 언어를 계속해서 갈고닦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새로운 법을 제정할 때 압축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문장을 만들고자 하고 그 정제된 문장을 해석하고자 노력하면서 해석론이 발달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시에서 작법과 해법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91쪽, 밀고 두드리는 법)
나는 판사로서 최대한 앎을 추구하면서도, 결국 어쩔 수 없는 '모름'을 인정해야 할 때가 있음을 안다. 알 듯 말 듯 한 상황에서 '잘 안다'고 착각할 수 있다. '모르는 것은 아니다'며 자존심을 내세울 수도 있고, '잘 모른다'며 순순히 고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섣부른 앎'과 '솔직한 모름' 사이에서 '솔직한 모름'이 '섣부른 앎'보다 차라리 더 신중한 태도이고 그래서 덜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판결은 반드시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맺어져야 한다. 그것이 분쟁을 매듭지어야 하는 판결의 역할이다. 법학에서는 판결이 그저 판사의 '모르겠음'으로 마무리되도록 두지 않고 이런 상황에 대비해 미리 이론을 만들어 두었다. 바로 '증명책임 법리'이다. 증명책임 법리란 쉽게 말해 '내가 원하는 결과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내가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원하는 결과나 효과를 얻을 것이고, 증명할 수 없다면 그렇지 못할 것이다. 법학에서는 이 명제를 발전시켜, 어떤 결과나 효과를 누리기 위해 증명해야 할 사실을 미리 정하고 이를 누가 증명할지 배분해 두었다. 결국 판사가 '잘 모르겠다'고 하는 말은 곧 '증명이 부족하다'는 말과 같아. 즉 증명책임 법리를 발동해서 '당사자가 원하는 결과나 효과를 누리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164~169쪽, 증명책임)
심리학 용어 라포르(Rapport)는 '서로의 신뢰관계, 마음의 유대' 등을 의미한다. 주로 의료계에서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라포르가 형성되면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와 원하는 바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라포르는 의사와 환자가 동행하는 데 전제조건이 된다. 재판과 판결 과정에서도 라포르가 중요하다. 재판과 판결은 누군가 한 명이 외따로 완성해 나가는 일방적 결과물이 아니다. 판사와 당사자 사이에, 또 판사들 사이에 상호작용을 통해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179~180쪽, 인간다움의 발로)
나를 비롯한 판사들은 판결에 '~라고 보인다'거나 '~라고 판단된다' 등 수동 표현을 자주 쓴다. 사실 이것은 판결이 구어체로 작성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자주 쓰게 되는, 판사의 버릇 같은 것이다. 굳이 수동 표현을 쓰는 것은 주어를 나타내지 않기 위함이다. '~라고 보인다'거나 '~라고 판단된다'는 수동 표현은 '이 법원이 ~라고 본다'거나 '~라고 판단한다'는 능동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이나 재판부를 주어로 삼아 이를 드러내는 것이 어색하다고 느껴 생략하다 보니 이런 수동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224쪽, 직업적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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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어도 아무나 못 누린다"…진짜 '상위 0.1%'...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손호영 지음 | 동아시아 | 240쪽 |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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