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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실리콘 컴퓨터의 종말, '양자 시대'의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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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쿠 '양자 컴퓨터의 미래'에서
실리콘반도체 한계 상황 전망

원자 활용한 양자 검퓨터
슈퍼컴 1만년 걸리는 문제도
200초만에 해결 가능
인류 미래 바꿀 혁명적 기술

[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실리콘 컴퓨터의 종말, '양자 시대'의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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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실리콘 시대를 살아간다. 손톱만 한 마이크로칩에 수많은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집적해서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는 컴퓨터 세계에서 살고 있다. 1947년 트랜지스터가 세상에 등장한 후, 컴퓨터 기술에 투자해 성과를 거둔 기업과 국가는 모두 번영했다. 개인도 마찬가지였다. 실리콘밸리의 거대한 부는 그 상징이다. 한국이 선진국이 된 것도 실리콘 시대의 흐름에 잘 올라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관련 기업의 성장이 곧 국부의 증진일 수 있던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양자 컴퓨터의 미래’(김영사)에서 미치오 카쿠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제 실리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실리콘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근원적 한계에 부닥칠 날이 성큼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실리콘 시대를 지배하는 법칙은 무어의 법칙이다. 인텔 설립자 고든 무어가 예측한 법칙으로 반도체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숫자가 약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휴대전화다. 손바닥만 한 전화가 냉전 시절 미국 국방부 컴퓨터보다 더 강력한 기능을 수행하고, 조지 루커스가 ‘스타워즈’를 찍을 때보다 더 생생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60년 가까이 잘 들어맞던 무어의 법칙이 요즘 무너지고 있다. 기술 발전 속도가 느려지면서 무어의 주기가 길어지고 있으며, 조만간 정체 상태로 접어들 전망이다. 반도체 크기의 한계 탓이다. 현재 실리콘 반도체의 가장 얇은 층은 고작 몇 나노미터 크기에 불과하다. 원자 하나가 0.1㎚ 크기이므로 작아질 수 있는 데까지 작아진 셈이다. 문제는 그 크기가 원자에 가까워질수록 양자 효과, 즉 불확정성 원리가 지배하면서 현재 기술로는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자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회로를 망가뜨리거나, 과도한 열을 발생시켜 칩을 녹일 수도 있다. 현대 문명은 거의 전적으로 컴퓨터 능력에 의존한다. 무어의 법칙이 무너지면 성장의 한계로 이어지고, 문명 전체가 장기 정체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인류가 1만년 전 신석기 농업혁명에서 18세기 산업혁명에 이를 때까지 겪은 느린 발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실리콘 시대가 종언을 고하면, 그 혜택을 누려온 한국 경제도 위기에 빠진다. 디트로이트 등 미국 자동차 산업과 함께 번영을 누리던 도시들이 일본, 한국 등의 추격에 못 이겨 러스트 벨트로 바뀌었듯, 기술 격차 소멸에 따라 중국 등이 우리를 빠르게 추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쿠는 양자 컴퓨터는 인류 미래를 근본적으로 바꿀 혁명적인 기술이라고 했다. 원자 자체를 직접 활용해 컴퓨터를 만듦으로써, 실리콘 반도체의 물리적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주는 까닭이다. 더욱이 이 컴퓨터는 모든 계산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체인 원자 규모에서 행하기에 기존 컴퓨터 성능을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더 나아가 중첩과 얽힘 등 양자 세계의 법칙을 활용해서 생명 현상, 기후 예측 등 실리콘 컴퓨터론 도저히 알지 못 할 일들을 정확히 계산해낼 수 있다. 구글은 "양자 컴퓨터가 등장하면 현재 세계 최고로 알려진 컴퓨터는 주판처럼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수 학자의 연구실에서 오랫동안 이론적으로 논의되던 양자 컴퓨터가 최근 몇 년 본격적으로 사람들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관련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는 등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19년 구글이 자체 개발한 양자 컴퓨터를 선보인 게 큰 계기였다. 구글은 이 컴퓨터가 슈퍼컴퓨터로 1만년 걸리는 문제를 200초 만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 실험실 수준이나, ‘궁극의 컴퓨터’가 현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021년 IBM 역시 새로운 양자 컴퓨터를 선보이며 미래를 향한 경쟁에 불을 붙였다.

양자 컴퓨터는 기존 실리콘 컴퓨터가 만들어 낸 세계를 뿌리부터 뒤흔든다. 가령, 양자 컴퓨터는 행정 관리, 군사 기밀, 금융 거래 등에서 쓰이는 현재의 모든 보안 코드를 무력화할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을 해킹해 암호화폐 시장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개인 정보가 유출되고, 은행 자금이 임의로 인출되며, 미사일 같은 무기가 테러에 사용되는 등 실리콘 컴퓨터로 구축된 지구 문명 자체가 극도의 혼란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나쁜 일만 있진 않다. 양자 컴퓨터의 획기적 계산 능력으로 지금껏 해결할 수 없던 숱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양자 컴퓨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하면 그 위력은 상상할 수 없다. 인공지능의 학습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면서 모든 분야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20년 가까이 엄청난 세금을 투여했으나, 우리는 아직 출산율 문제를 해소할 뚜렷한 방법을 모른다. 양자 컴퓨터가 있다면, 우리는 축적 데이터를 활용해 그 정확한 원인을 발견하고, 그에 따른 최적의 방법을 알아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양자 컴퓨터는 미래를 거의 현실에 가깝게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는 기계다. 이 컴퓨터를 이용해서 우리는 지구 온난화가 국가 경제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그려내고 차세대 배터리 등 그 해결책을 찾아낼 수도 있고, 가상 실험실을 이용해 암과 같은 난치병을 치료할 새로운 신약을 개발할 수도 있다. 또 병 속에서 태양을 구현하는 핵융합 실험을 정교히 수행함으로써 에너지 문제의 영구적 해결책을 마련할 수도 있다. 양자 컴퓨터는 현재 문명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술이다. 우리는 이를 이용해 과거에 불가능했던 숱한 일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양자 컴퓨터 개발에 미국, 중국, 유럽 등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넣고, 구글, IBM,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뛰어들고 있다. 양자 컴퓨터를 선점하기 위해 중국은 국립 양자정보과학연구소에 이미 100억달러를 투자했고, 2021년 미국은 총 6억25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일단, 양자 시대가 열리면 실리콘 밸리는 새로운 러스트 벨트로 전락할 것이고, 이에 뒤처지는 기업이나 국가는 영원한 2등으로 전락할 수 있다. 실리콘 시대의 번영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의 국가적 관심도 필요하다.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30년 전, 인터넷 초기에 우리가 외쳤던 구호다. 바꿀 때도 됐다. "반도체는 뒤졌지만, 양자화는 앞서가자!"


출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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