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발 묶인 강제실종방지法…"소멸시효 독소조항"
강제실종방지협약 가입했지만, 입법 '지지부진'
국회 계류 중인 법안들도 소멸시효 탓에 우려
피해단체들, 오늘 법무부 장관에 탄원서 제출
#. 1969년 12월, 강릉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YS-11기는 북한의 간첩에 의해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됐다. 탑승자 50명 중 39명은 사건 발생 66일 만인 1970년 2월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지만, 황원 MBC PD 등 11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아들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는 "어머니는 '돌아오면 일을 하셔야지' 하며 끝내 아버지의 퇴직 처리를 하지 않으셨다"며 "50년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비행기는 아직 '비행 중'이다. 저와 가족도 여전히 지독한 고통 속에 있다"고 털어놨다.
6·25전쟁 이래 북한에 납치·억류된 국민들의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 가입에 따른 입법 조치는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길게는 2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들도 내용상 손해배상 책임의 '소멸시효'를 담고 있어,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에겐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1969년 12월 북한에 의한 대한항공 YS-11기 납치사건 피해자 황원씨(당시 MBC PD)가 피랍 전 아들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왼쪽)와 딸을 안고 있는 모습
사단법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와 1969년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측은 25일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실종방지협약 이행법률안 제정을 위한 탄원서'를 한동훈 장관에게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엔 총회는 2006년 12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채택했으며, 우리 정부는 올해 1월 해당 협약에 가입했다.
6·25전쟁 당시 북측에 납치된 우리 국민은 1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송환 국군포로도 5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북한은 정전 이후로도 베트남전, 해군 방송선 'I-2호정' 나포사건 등을 비롯해 516명의 국군포로와 민간인 납북자를 송환하지 않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에만 최소 6명(김국기·최춘길·김정욱·김원호·고현철·신원미상 1명)을 억류 중이다.
북한은 그동안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이 아닐 때에도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에 비협조로 일관했다. 강제로 억류 중인 시민이나 포로는 1명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것이다. 국제사회를 통한 압박이 현실적인 방안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 가입도 같은 맥락으로 평가된다. 국제법상 북한의 책임을 규명하고, 송환을 촉구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명분을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당면한 과제가 협약상 정부의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국내 입법이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은 2건이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월 대표 발의한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안'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5월 대표 발의한 '강제실종 범죄 처벌, 강제실종의 방지 및 피해자의 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 등이다. 길게는 2년 넘게 지났지만, 법사위 소위에 상정된 것은 불과 보름 전이다. 해당 법안들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21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할 경우 자동으로 폐기된다.
일부 피해 가족들은 입법 지연뿐만 아니라 법안 내용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손해배상 책임에 대한 '소멸시효'를 정한 조항이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에겐 '독소조항'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강제실종으로 인한 피해나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20년, '피해 발생'으로부터 50년이라는 소멸시효를 규정했다. 김 대표의 법안은 소멸시효를 단기 10년, 장기 30년으로 뒀다. 전쟁 및 전후 시점의 피해자 상당수는 배제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는 "강제실종방지협약에서 가장 중요한 손해배상 책임에 소멸시효를 정한 것은 명백하게 협약에 어긋난다"며 "강제실종 범죄는 현재진행형인데 권리구제에 관한 배상이 소멸시효에 따라 완성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에 가족이 강제로 납치된 우리는 다가오는 추석도 먹먹한 심정으로 보내야 한다"며 "강제실종방지협약의 원칙과 취지에 따라 '피해자 중심'으로 법안이 만들어질 수 있길 호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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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북한인권시민연합(NKHR)·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등 인권단체 14곳과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씨는 지난달 30일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국민의힘) 앞으로 강제실종방지협약 이행을 위한 입법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도 최근 성명을 통해 "법률 제정은 강제실종 등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규명과 가해자 처벌, 피해자 구제 그리고 향후 이와 같은 범죄를 예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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